내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아이들과 캐나다 여행을 다녀와서 그 내용을 책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착하자마자 초고를 작성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였는지 무엇에 홀린 듯이 휘리릭 초고를 쓸 수 있었다. 나름 자신감도 있었다. 내가 느끼고 얻은 것들이 좋은 책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기획서를 써서 여러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나의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출판사는 선뜻 나오지 않았다.
https://brunch.co.kr/@tham2000/239
안타까웠다. 출판사가 내 콘텐츠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 책을 쓰겠다는 생각이 애초부터 무리였던 건 아니었을까? 초고를 완성했을 때 가졌던 자신감은 온데 간데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해서든 책을 내보고 싶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내가 바라는 바가 이뤄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나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주저 앉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했던 말을 되새겼다. 흔들리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꽃이 필 날이 올 거라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퇴사말고휴직, p.102>
그래서 내가 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원고를 고치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획서를 새롭게 작성하는 일이었다.
원고를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고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브런치와 블로그였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 편씩 글을 발행했다. 발행하기 전 내용을 수차례 읽으며 하나 둘 고쳤다. 의외로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게다가 그 사이 내 생각이 변하기도 했다. 무리하지 않고 일주일에 하나씩 고쳐갔다. 지치지 않으려면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기획서는 새롭게 썼다. 처음 작성해서 보냈던 기획서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원고도 원고지만 출판 담당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기획서를 잘 쓰는 것도 필요했다. 기획서가 중요하다고 하던데, 나는 그 일을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다. 초고를 작성하는 일에 집중해서 그랬는지 기획서 작성하는 일은 대충 해버리고 말았다. 중요한 것은 원고라고 생각했다.
핑계도 있었다. 기획서를 쓰는 방법을 잘 몰랐다. 원데이 책쓰기 강의를 몇 번 들었던 게 전부였던 나는 기획서를 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책을 보며 익힌 게 전부였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책의 제목과 기획의도, 책을 쓰게 된 배경, 작가소개와 목차 그리고 원고 몇 꼭지를 기획서에 담았다.
초고를 다 쓰고 매주 한 편씩 수정을 할 때, 편집장으로부터 듣는 책쓰기 강의를 우연히 접하게 됐다. 2시간짜리 짧은 강의였지만 집 근처에서 하는 데다 비용 부담도 거의 없어 한 번 들어보면 좋겠거니 싶었다. 그리고 그 때 편집장으로부터 기획서 쓰는 요령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강사는 투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독자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중심으로 기획서를 작성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컨셉을 잘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석하게도 내 기획서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내 이야기를 쓰느라 집중한 나머지 독자들이 내가 쓴 글을 읽고 무엇을 얻을 지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다. 이 부부을 중점적으로 공략해 기획서를 다시 써 보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투고 메일을 보내는 대상도 문제였다. 나는 대형 출판사 중심으로 투고 메일을 보냈다. 대형 출판사에서 내는 책이 잘 팔리기에 내 책도 그랬으면 햇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문제는 나의 생각과 달리 대형 출판사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콘텐츠가 대박짜리라면 이야기가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대형 출판사가 원하는 잘 알려진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 콘텐츠가 엄청난 대박꺼리도 아니었다.
주제도 모르고 분위기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작성했던 기획서였고 투고 메일이었으니 제안 메일에 긍정적인 피드백이 올 리 만무했다. 하지만 다행히 좌절하진 않았다. 꾸준히 글을 고치며 나의 콘텐츠를 알아줄 만한 출판사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 메일을 보냈다. 언젠가는 한 군데서 답이 오겠거니 하고.
그런던 어느날 전직 편집장에게 들었던 책쓰기 강의의 한 내용이 또 떠올랐다. 투고 메일을 백번 보내는 것보다 아는 출판 담당자가 있다면 그쪽에 부탁하는 게 훨씬 책을 내기 쉬운 방법이라고 강사는 말했다. 아쉽게도 주변에 출판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불현듯 얼마전 함께 점심을 먹었던 회사에서 퇴직하신 전 부장님이 떠올랐다. 그는 책을 낼 뻔 했다며 편집장과 나눈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는데, 어쩌면 그게 나의 동아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염치 없이 전화를 해서 식사할 때 말씀주신 그 출판 담당자를 소개시켜줄 수 없는지 부탁을 드렸다.
애석하게도 그는 출판 담당자와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주변의 출판 일을 하는 분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한 분의 이메일을 내게 건네 주었다. 1인 출판사 대표님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메일로 준비했던 기획서와 원고 일부를 보내드렸다.
안녕하세요, 최호진 님?
의뢰주셔서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내용 찬찬히 살펴보고 1월 20일(월) 오전까지 의견 정리해 연락드리겠습니다.
곧장 답이 왔다.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메일이었지만 찬찬히 살펴보겠다는 이야기가 뭔가 다르게 들렸다. 나 혼자만의 착각일 지는 모르겠지만 그간에 받았던 메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다시 메일이 왔다. 글이 잘 읽힌다며, 상호 윈윈한 스토리 텔링 강화 방안 및 경쟁력 등을 검토해 보신다며 내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궁금해 하셨다. 심장이 쿵쾅쿵쾅 떨렸다. 이렇게 구체적인 피드백도 추가로 요청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직 확답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이곳과 작업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들었다.
그 후에도 몇 번 이메일을 주고 받고 만나서 회의도 했다. 추가로 드린 나의 자료를 보시고 대표님은 새로운 제안을 주셨다. 기존에 쓴 휴직 후 경험했던 이야기와 아이들과의 여행 이야기를 섞어서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었다. 제안이 내가 기획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대표님께서 주신 제안을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만져지는 것 같았다. 휴직하며 경험했던 나, 두 아이 아빠로서 나, 그리고 일하는 나를 입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표님의 이야기 덕분에 나도 몰랐던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톡 터져 버린 것 같았다.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그런지, 출판사 대표님과 몇 번의 회의를 하면서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우선 내게 적극적인 대표님을 보면서 금전적인 부분에서의 의구심이 들었다. 이러다가 자비 출판을 요구하시는 것은 아닌지, 혹여나 계약 조건이 뭔가 다른 게 있는지 걱정도 됐다. 중요한 문제라 생각해 조심스레 여쭤봤다. 다행히 그런 조건 따위는 없었다. 기존의 출판과 마찬가지로 인세가 있는 계약으로 나는 열심히 책을 쓰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다. 또 하나의 걱정은 출판사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1인 출판사다 보니 별도의 출판사 사무실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커피숍에서 미팅을 진행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진짜 출판사가 맞는지는 가끔 의심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의심은 대표님의 태도 덕분에 금세 사라지곤 했다. 대표님은 열정적으로 나의 책을 검토해 주셨고, 대표님의 손을 거칠 때마다 나의 콘텐츠가 탄탄해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점점 걱정은 믿음으로 변했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출판사 대표님에게는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 최근 1년 동안 안 좋은 일로 인해 책을 거들떠 보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2020년 새해를 맞아 이제 마음을 추스리고 책을 만들어볼까 하는데, 나를 만나셨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받은 제안이었는데, 내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다고 했다. 휴직하며 고민하고 경험했던 것들에 공감도 갔다고 했다. 물론 지인의 부탁으로 검토를 시작한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인연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 대표님이 마음을 추스리지 않았더라면, 그 시점에 내가 무턱대고 책과 아무 관련도 없는 퇴직하신 부장님께 연락을 드리지 않았더라면 이런 인연이 맺어졌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자화자찬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두드리다보니 이렇게 연결되는 구나 싶어 신기했다.
내 이야기에 대표님께서 충분히 공감해 주셔서 그런지 우리의 작업은 원만하게 진행됐다. 나도 대표님도 책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존중했고 적극적으로 원고에 반영했다. 덕분에 일하는 내내 즐거웠다. 대표님이 처음 이야기 하신 것처럼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