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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기] 주제를 잡아 글을 쓰기 시작하다

브런치 매거진 기능을 적극 활용하다

by 최호진

책을 써볼까라는 생각은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했지만 책을 쓴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애시당초 무리한 생각이었다. 책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요술방망이처럼 뚝딱하고 책이 나올 수는 없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책을 쓸 수 없을거라고 우울해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나 잘 하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 블로그에 한 편씩 글을 썼다. 좋은 글이든 나쁜 글이든 하나씩 써 내려갔다. 그게 의미있는 결과로 연결될 거라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그렇게 일상을 기록하고 그 때 느꼈던 생각을 정리하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https://brunch.co.kr/@tham2000/235



브런치의 매거진을 활용하다


"한 주제에 대해서 스무 편 정도의 글을 써 보세요"

매일 블로그에 한 편씩 글을 쓰던 나는, 우연히 책쓰기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에 꽂히고 말았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스무 개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다면 그 이야기는 충분히 책으로 연결할 수 있는 "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강사의 말에, 나도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책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허우적대던 내가 지푸라기라도 잡은 느낌이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게 브런치였다. 당시 나는 브런치를 크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 귀찮은 일을 몇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문득 "방치"했던 브런치에 하나의 주제를 잡아 꾸준히 글을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의 "매거진" 기능을 활용해 거기에 정기적으로 글을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두 아이 아빠의 휴직일기" 매거진을 만들었다. 글도 없이 무작정 매거진부터 만들었다. 물론 당시엔 이 이야기가 책으로 연결될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뭐가 됐든 하나의 주제로 끈질기게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두 아이 아빠의 휴직일기" 매거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때 내가 세운 원칙이 하나 있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 편씩 글을 발행한다는 것이 그 원칙었다. 어떻게 해서든 발행시기를 고정적으로 잡아둬야꾸준히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써내려갔고 그런 과정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물론 평범한 일상에서 정기적으로 글의 소재를 찾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꾸역꾸역 써내려간 글 덕분에 휴직의 시간을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캡처_브런치매거진_두아이아빠의휴직일기.PNG 책이 나오고나서도 여기에 꾸준히 글을 써 올렸었다.


신기한 건 그 다음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하니 쓰고 싶은 주제가 하나 더 떠올랐다. 휴직을 하면서 남들에게 강의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강의를 하려고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주제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내 경험을 나눠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어 보이지 않았다. 문득 쓸모 없는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이렇게 쓸모 없는 경험만 남게 되었는지 나를 반성하는 글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매거진을 하나 만들었다. "직장생활 반성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번 매거진은 매주 화요일마다 쓰기로 계획을 잡고 하나씩 정리해 봤다. 내가 이렇게 개차반으로 일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아쉬운 점들이 많이 보였다. 휴직을 하면서 직장과 떨어져서 있다보니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의미있었다.


캡처_브런치북_직장생활반성문.PNG 직장생활반성문은 브런치북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매거진을 추가해서 글을 써내려갔다. 물론 만들 수 있는 매거진의 갯수가 정해져 있어 무작정 만들 수 있진 않았지만 파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매거진을 만들어서 10개 이상의 글로 정리해 보곤 했다. "꾸준함"에 대해 정리해보고 싶어 꾸준함을 주제로도 글을 썼고, 휴직하면서 읽었던 책들을 정리해보고 싶어 "휴직과 독서"라는 주제로 글도 썼다. 새롭게 공부하고 싶어서 커피 이야기로도 글을 써봤다.,


하나의 주제로 정기적으로 글을 쓰면서 나의 경험이 조금 더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휴직"이라는 덩어리가 만져지다


양질전환의 법칙이 있다. 질적 전환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양적인 축적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인데, 매거진을 통해 다양한 주제에 대해 10개 이상씩의 글을 계속해서 쓰다보니 어느 정도의 질적 전환이 이뤄지는 것 같았다. 내 콘텐츠라고 까지 말하긴 어렵지만,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도 알 수 있었다. 의외로 나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직장생활 반성문"에 대한 사람들의 호응이 좋았다.


그렇게 몇 개월간의 글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 보았다. 출판사에 의뢰하기 위한 "출간 기획서"를 작성한게 새로운 시도였다. 채워야 할 부분들은 많겠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덩어리가 만져지는 것 같았다. 그 덩어리는 바로 "휴직"이었다. 내가 휴직을 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에 대한 아쉬운 점을 정리한 글들도 휴직을 했기에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충분히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휴직을 하며 새롭게 경험한 것 그리고 나를 돌아본 것들에 대해서 출간 기획서를 작성했다. 기획서는 책쓰기 책에서 본 것들을 활용해서 만들었다. 지금 보면 엉성한 구석들도 많았지만 그렇게 출간 기획서로 한 번 정리해보니 그동안 축적했던 것들이 달리 보이기도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해 지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아쉬운 부분도 많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만 너무 집중했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에는 크게 신경쓰지 못했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 작성한 출간기획서를 몇 군데 출판사에 보냈지만 그들의 반응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각오는 했지만 거절 메일을 그렇게 받으니 약간의 멘붕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에, 하나씩 글을 정리하며 보완하면 되겠거니 싶었다.


때마침 아이들과의 70일간의 캐나다 여정이 예정되어 있었던 터라 캐나다에서 남는 시간에 하나씩 정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뭔가 창의적인 생각들이 번뜩이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안데르스 에릭슨이 쓴 "1만 시간의 재발견"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1만 시간을 들이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콤 글래드웰의 주장을 반박한다. 물론 꾸준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에서 작가는 무작정 노력만 하는 것을 경계한다. 노력도 올바른 방법이 있다며 "의식적인" 노력을 중시한다.


그냥 블로그에 글을 썼던 게 시간을 들인 행위였다면 브런치를 통해 매거진을 발행했던 것은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썼던 것은 마구잡이로 매일 블로그에 글을 썼던 것에 비해 나의 글쓰기 주제를 탄탄하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쓴 습관이 도움도 많이 됐다. 매일 썼던 블로그의 글이 나의 글쓰기 근육을 탄탄하게 만들었기에 주제가 있는 글쓰기가 수월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주제를 잡고 브런치 매거진에 꾸준히 글을 썼던 것은 나의 이야기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 과정을 출간기획서로 다시 엮어낸 것은 그간 썼던 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비록 그 과정이 곧장 책으로 연결되진 못했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실제로 후에 새로운 연결로 이어지기도 했고.


(물론 브런치 매거진을 통해서만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블로그에서도 폴더를 만들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나의 주제로 글을 꾸준히 써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20개 까지는 규칙적으로 써보겠다고 하는 게 중요한 듯 싶다.)


약 5개월간의 활동에 대해 출간기획서까지 작성하고 이를 스스로 돌아본 후 아이들과 캐나다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책쓰기를 마무리해보려 했다. 하지만 의외의 사건들 덕분에 나는 5개월동안 썼던 글들을 책에서 다 빼야만 했다. 아쉽지만 그간 썼던 것을 접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운 주제로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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