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2일 출판사 편집장님으로부터 책을 받았다. 내가 쓴, 내 이름이 적힌, 내 생애 첫번째 책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격한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라도 뚝뚝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리둥절했다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이게 내 책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책이 깔렸을 때도 그랬다. 운 좋게 7월의 책으로 선정돼 서점 한 가운데 책이 놓였는데 의외로 덤덤했다. 기쁘다는 감정보다는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팔지라는 생각이 앞설 정도였으니까. 책이라는 물건 자체는 내게 큰 감흥을 주진 않았었다.
진짜 나를 흥분시켰던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사람들이 내가 쓴 책에 대해 반응을 보일 때 비로소 내가 책을 썼구나라고 실감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출간 소식에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책을 다 읽은 분들의 피드백을 받을 때면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까지 들었다. 사람들의 반응에 취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동안 그런 기분이 계속 됐고, 일상의 평온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거의 두 달 가까이 시간이 소요된 듯 싶다.
평정심을 유지하게 된 요즘 코로나로 인해 반 강제로 사회와 격리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 기회에 내가 책을 쓴 과정에 대해 정리해보고 싶었다. 나를 위한 길이기도 하고, 책을 한 번 써보고 싶은 분들을 위한 일이기도하다. 이 이야기가 책을 쓰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첫번째 글을 써본다. 첫번째 글은 출간하고 달라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쓰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애석하게도 책을 내고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애초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책이 불티나게 팔리면야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그러진 못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의도 생각보다 많이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크게 변한 건 없어도 많은 것이 달라지긴 했다.
우선 가장 큰 것은 "작가"라는 호칭을 얻게 된 것이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 아이들과 저녁에 한강 둔치를 달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누군가 "최호진 작가님"하고 나를 크게 불렀다. 누가 나에게 "작가"라고 부르나 싶어 돌아봤는데 김민식 PD님이셨다.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어하는 분과 우연히 만난다는 것도 신났지만 그분이 나에게 "작가"라고 불러주는 것도 신기했다. 뭔가 새로운 타이틀을 얻은 기분이었고, 인정받은 느낌도 들었다. 아 진짜 내가 작가가 된 걸까?
나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준 분은 비단 김PD님만이 아니었다. 책을 매개로 만나게 된 분들은 매번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셨다. 작가라고 불리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그 호칭이 어색하고 민망했다. 내가 작가라 불려도 되는 사람일까 싶었다. 무릇 작가라 하면 글을 쓰는 일을 본업으로 삼거나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베스트셀러를 내신 분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호칭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소위 말하는 "작가"라는 사람과 거리가 멀었으니까. 오히려 이런 호칭을 불러준다는 게 부끄러웠다. 아직 그럴 그릇도 아니라 생각했다.
가급적 작가라고 불릴 때면 손사레를 치곤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받아들이는 것도 상책이라 생각했다. 작년 자기혁명캠프 MVP가 됐을 때도 생각났다. 그리고 책에서 정리한 문구도 떠올랐다.
"나에게 캠프 MVP가 주어지니 너무 기쁠 따름이었다. 물론 부담스러웠다. 뭔가 MVP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부담이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고 왕관의 무게를 견뎌보기로 했다." ('퇴사 말고 휴직' 중에서)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MVP답게 살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작가라고 불리는 것의 무게감을 견디며 작가답게 살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작가라는 호칭이 주는 무게감이 조금 가벼워지기도 했고.
책이 나오고 나서 여러 번의 북토크를 진행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그 속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언제나 나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한편으로 긴장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설렜기도 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북토크를 준비했다. 모이는 사람들의 특성에 맞게 매번 강의 내용을 조금씩 수정했다. 책을 이미 읽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었기에 책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준비하고 강의를 하는 시간은 충분히 나에게는 유의미했다. 강의를 들으신 분들의 표정을 보며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더 커진 느낌도 들었다.
좋은 기회로 1:1 상담도 할 수 있었다. 휴직을 고민하신 분, 이미 복직을 하신 분, 자기 이야기로 책을 쓰고 싶어하는 분 등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에게 내가 가진 진심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도 내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덕분에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과 새로운 친분도 쌓을 수 있었다.
나의 꿈에도 조금 가까워진 느낌도 들었다. 많든 적든 사람들과 만나며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눠주는 사람, 그것이 내 꿈이었으니까.
"덕분에 나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나의 것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나를 필요로 하는 몇 명의 사람에게 내가 가진 경험화 지식을 아낌없이 공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 그 속에서 나의 진정성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다." ('퇴사 말고 휴직' 중에서)
책을 내고 나서 결혼식을 치렀을 때가 생각났다. 2008년 4월에 결혼식을 올리던 날, 나는 많은 분들께 감사했다. 멀리서 와주신 하객들은 물론이거니와 오지 못해 미안하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편지를 보내준 분들 한 분 한 분께 너무 감사했다. 그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생을 잘못살지 않았구나라고 안도할 수 있었고, 앞으로 더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이번에 책을 내고 나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내 책이 나온 것을 자기일처럼 기뻐해 주신 분들을 보며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내 주변에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었다. 많은 도움도 받았다.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 주신 분도, 북토크 자리를 열어 주신 분도, 30권이나 구매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다. 나 혼자 만들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결코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알고보면 내가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서 크고 작은 도움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책을 내고 나서 실감할 수 있었다.
모두가 축하를 해주며 칭찬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독서 모임의 사람들은 책에서 느꼈던 아쉬운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주었다. 한켠으로 서운한 감정이 살짝 올라오기도 했지만, 내게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어려운 이야기지만 솔직하게 비판을 해주신 분들이 참으로 감사했다. 나를 정말 좋아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는구나 싶어 그분들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책이라는 것이 나의 소중한 인간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매일 블로그를 쓰면서도 의심이 들 때도 있었다. 과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책을 쓰면서 이런 의심을 지울 수 있었다. 매일 썼던 블로그가 큰 도움이 되었다. 알고보니 그것들이 나의 역사가 되어 있었고 책의 근간을 이룰 수 있었다. 꾸준히 글을 쓰는 게 언젠가는 결실을 맺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원국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행복해지려고 글을 쓴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책을 쓰는 시간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글에 대해서 자신감을 얻은 것도 큰 수확이었다. 그렇다고 부족함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부끄러운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심을 꾹꾹 담아 쓴 이야기는 독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책을 쓰면서 그리고 독자들과 만나면서 알 수 있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정작 중요한 것은 "진심"이니까.
덕분에 글을 계속 쓰면서 새로운 책을 써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내이야기를 글과 책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속에서 사람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다. 책 덕분에 얻은 자신감이었다.
휴직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느낄 수 있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휴직은 내게 큰 선물이었다. 그리고 책을 쓰고 정리하는 시간 동안 휴직이 준 선물의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휴직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간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이 책을 쓰면서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휴직에 대한 자신감도 갖게 됐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당당히 휴직을 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회사에서는 찍힐지언정 삶의 소중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을거라며 말이다. 더 많은 사람과 휴직이라는 콘텐츠로 이야기 나누고 싶어졌다. 꼭 휴직이 아니더라도 항상 앞만 보고 직진만 하던 사람들에게 인생의 쉼표를 찍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나눠주고 싶어졌다.
책임감도 갖게 됐다. 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 복직을 해서 회사에서 성과를 내고 싶다. 동시에 다양한 외부 활동도 해보고 싶다. 일도 잘하며 자신의 진정성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복직이 두렵지만은 않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누가 휴직자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최호진을 바라보라"
조금 웃긴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도 듣고 싶다. 오버스럽지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책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꼴랑 책 한 권 썼다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런 분들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내 책은 그렇진 않은 듯 했다. 하지만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나의 많은 부분이 책을 통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책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고 많은 분들도 자신의 책을 써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꼭 그것이 수익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신의 삶에 크게 영향을 주는 일이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