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하고 아이들과 70일 동안 캐나다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과 좋은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간 여행이었다. 하지만 욕심도 있었다. 여행을 계기로 휴직 기간 동안 하나씩 쌓아왔던 나의 글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내 글들을 돌아보는 게 의미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https://brunch.co.kr/@tham2000/237
캐나다에서, 아들의 맹장이 터지는 사고가 뱔생했다. 그것도 도착한 지 열흘만에. 현지 생활에 적응하면 뭐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픈 아들을 보살피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었다. 물론 뭐라도 하려면 할 수는 있었다. 글 쓸 수 있는 충분한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들이 아픈 게 내 책임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으니까.
수술이 잘 되고, 생각보다 병원비가 싸게 나와 한 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아들이 내게 던진 한 마디가 나의 캐나다에서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 좋은 일이 생길거야"
수술이 끝나고 다음날, 회복을 위해 병동 주변을 걷던 아이는, 캐나다에 와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자신의 상황이 다소 억울하다 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며 더 좋은 일이 생길거라 믿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자꾸 나를 질책하듯 들렸다.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덕분에 나는 마음 한 켠에 가진 부담을 조금 덜어 놓을 수 있었다. 캐나다에 와서 뭔가를 정리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의 믿음 덕분인지, 내가 부담을 덜어 놓아서 그런건지 그 이후로 우리의 여행은 너무나도 순탄했다. 캐나다에서의 일상은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했다. 중간 중간 여행을 다녀오며 캐나다의 대자연과 마주할 수도 있었다. 곰도 만나고 쏟아지는 별도 보며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해프닝도 겪었다. 작은 사고도 있었고.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진 못했지만 아이들 덕분에 너무나 소중한 두달여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이 한 뼘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소중했던 캐나다의 추억이 당분간 우리 삼부자를 끈끈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도 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었다. 아이들과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여행의 감동이 두 배, 세 배가 될 것 같았다 감동이 가시기 전에 그 감동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여행이 두려운 아빠들에게 그 시간이 얼마나 수중한 경험이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면 좋겠다 싶었다.
서울로 돌아와 부랴부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나는대로 글을 적어보았다. 손가락에 흐름을 맡기며 의식의 흐름대로 하나씩 정리해보았다. 목차도 정리해 보았다. 덕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었다. 흥분된 마음으로 매일 초고를 썼다. 하루에 한 꼭지를 완성하자는 마음으로 썼고, 35개 정도되는 꼭지를 50여일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여행의 기분에 푹 빠져서 써서 그런지 금세 쓸 수 있었다.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내 열정이 식기 전에 쓴 글이라 그런지 따끈따끈한 경험이 녹여져 있는 것 같았다. 자뻑같지만 충분히 좋은 글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술술 써진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됐다. 그리고 그동안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고 이것 저것 기웃 거렸던 나 자신의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동안 쌓아왔던 휴직에 대한 경험을 정리한 글들이 다소 아깝기도 했지만 놓아주기로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물론 이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말이다.
초고를 완성하고 다시 기획서를 정비한 후,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충분히 몇 군데에서 연락이 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나의 열정적인 메일에 호응을 보인 출판사는 아무 데도 없었다. 남들은 출판사에서 알아보고 먼저 연락도 온다던데 내가 쓴 글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듯 했다. 내가 느낀 감동이, 상업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볼수는 없었는데 나 혼자 너무 감동에 빠져서 좋은 콘텐츠라 생각한 듯 했다. 그렇게 몇 번의 거절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착각을 인정할 수 있었다.
"역시, 책은 아무나 내는 게 아니었어"
이 이야기는 <퇴사 말고 휴직>을 쓴 저의 출간이야기입니다. 이미 책이 나온지 3개월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제 출간에 대한 이야기가 누군가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정리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