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썼던 과정을 몇 편의 글로 정리 중이다.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복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덕분에 책을 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힘들기도 했지만 설레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책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도 새록새록 솟아나고.
1월 말에 책을 내보기로 하고, 계약서도 쓰지 않은 채 나는 출판사와 작업을 시작했다. 출판사에서는 내 글에 대한 의견을 주셨고 부랴부랴 보완하고 수정하며 2월 25일이 마감인 공모전에 서둘러 원고를 제출했다. 출판사 대표님이 정리한 목차를 바탕으로 빈칸을 채워갔고, 잘못된 이음새를 고쳤다. 중간 중간 손 봐야 할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감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것이 강력했기에 미친듯이 원고를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대표님도 열심히 수정해주셨고.
덕분에 1차 원고를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긴 시간이 주어졌다면 더 좋은 글이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1차 원고를 마감해서 공모전에 제출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어느 정도의 틀이 잡혔기에 이제 여러 번 읽고 수정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한 번에 제대로 된 쓴 글을 쓰기 보다는 써놓고 고치는 전략을 택했다. 마감의 압박이 그래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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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에 원고를 내고 여유가 생겼다. 5월, 공모전 발표가 있을 때가지는 책을 낼 수 없다. 물론 공모전 입상을 포기하고 책을 낼 수도 있지만, 혹시나 공모전에 입상하면 얻게 되는 상금이 매력적이었기에 우선 기다려보기로 했다. 굳이 책을 빨리 낼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고 공모전에 입상할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지만.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5월까지 여러 번 읽고 수시로 고쳤다. 원고를 보며 어색한 부분을 정리했다. 아내에게도 원고를 보여줬다. 다독가인 아내가 좋은 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아내가 우리 원고를 보고 만족할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빡시게"고친 만큼 원고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대표님도 아내에게 보여주는 것을 반겨했다. 이미 나와 대표님은 책에 몰입한 상태라 수정할 부분을 찾기 어려운데 제3자가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셨다.
재미없다
아내의 반응은 의외였다.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내 이야기가 너무 진지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내용이야 이미 블로그를 통해 다 봐 왔던 것이라 공감은 하지만 적절한 유머코드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며 아쉬워했다. 분명 맞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몇 군데 유머 코드를 넣으라고 추천도 해 주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글을 쓸 때 너무 심각했던 게 문제였다. 수정하기가 꽤나 어려운 상황이라 아쉽지만 포기해야만 했다. 감동과 진지함으로 승부를 걸 수 밖에 없다며 애써 위로했다. 다음에 책을 쓴다면 정말 웃긴 책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이 책은 에세이야, 자기계발서야?
아내는 다시 질문을 건넸다. 당초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눴던 터라 자신있게 대답했다. 이 책은 에세이 형태의 자기계발서라고 말이다. 아내는 자기계발서라면 실질적인 팁이 있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난 후 독자가 행동으로 옮기거나 참조할 만한 사항이 있으면 유익할 것 같다며 말이다. 그런 책이 진짜 실용적인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한다며.
충분히 타당한 말이었다. 덕분에 몇 가지 생각할 수 있었다. 휴직을 고려할 때 고민해야 하는 것들, 휴직을 하고 해야 할 일들, 그리고 휴직 기간 동안 읽었던 추천 도서 등에 대한 글을 추가로 작성했다. 이런 팁들이 분명 휴직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며 말이다. 덕분에 책의 분량이 생각보다 길어지긴 했지만 구성이 더 알차게 바뀐 기분도 들었다. 내용이 추가되는 것에 대해 출판사에서도 충분히 받아줘서 다행이었고.
여기 맞춤법이 틀렸는데?
아내는 내게 지적만 건네지 않았다. 그랬다면 아내에 대한 애정이 급격히 식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두 번의 지적을 한 후 아내는 한줄 한줄 꼼꼼이 읽으며 맞춤법이 틀린 문장은 없는지, 어색한 문장은 없는지 체크해 주었다. 자기 책 읽는 시간도 없을텐데 새벽 5시에 일어나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한 문장 한 문장 정독하며 읽어 주었다. 덕분에 이상한 문장들이 매끄러워졌고, 놓쳤을 수도 있을 법한 틀린 표현들도 고칠 수 있었다. 출근해서도 업무 시작 전에 열심히 읽느라 주변 분들로부터 무슨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느냐는 질문까지 받았다고.
아내의 세 가지 지적 덕분에 책은 좀 더 뾰족해지고 정교해졌다. 출판사에서도 아내의 지적을 인정해 주었고, 덕분에 추가할 내용은 추가하고 보완할 내용은 보완할 수 있었다. 아내의 수정까지 마치고 나니 고지에 더 가까이 다다른 느낌도 들었다. 이렇게 구부능선을 넘어가며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아내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남편의 일이라도 큰 틀에서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지적해주기 힘들었테데 다시 한 번 아내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다소 나태해질 수 있었던 막판 작업에 긴장감도 불어넣어주고, 필요한 부분을 채워준 아내가 고마웠다.
내 블로그 필명은 ‘똘똘한 온달’이다. 나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 친 사람은 평강공주 같은 아내다. 바보가 아닌 ‘똘똘한’이라는 수식어 를 달았던 것은 내 자존심이다. 어찌됐든 나는 아내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도 아내 덕분에 만들어질 것이다. 항상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아내를 만나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그런 아내에게 언제든 인정받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퇴사말고휴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