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열심히 하려 하지 마
부서에 신입사원이 왔다. 귀하디 귀한 신입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회사에서 채용을 소극적으로 했던 터라, 몇 개의 부서에만 신입이 배치되었는데 용케도 우리 부서에 배치된 것이다. 신입사원이 우리 부서에 온다는 소문을 듣고 팀장들은 서로 자기네 팀으로 신입을 영입하려 했지만, 아쉽게도 신입은 우리 팀이 아닌 옆 팀에 배치 되었다. 비록 같은 팀에서 일을 하진 않았지만 휴직 후 오랜만에 만난 신입이 반가웠고, 선배랍시고 뭐라도 후배에게 주고 싶었다. 마흔이나 먹은 '꼰대' 차장이 주는 것들을 신입 사원이 바라는지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며 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그 팀에 있는 다른 후배와 셋이 약속을 잡고 점심을 먹었다. 다른 회사에 다니다가 우리 회사의 "신입"으로 들어오게 된 친구는 회사에 대한 이런 저런 꿈과 포부를 갖고 있는 듯 했다. 그 친구가 회사에서도 잘 적응하면서 즐겁게 직장생활을 하면 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왔을 때 신입사원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았으면도 했고.
"너무 열심히 하지 마"
밥을 먹다 맨 처음 내가 신입에게 꺼낸 말이 화두로 나왔다. 처음 우리 부서에 배치되었을 때 신입에게 내가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라고 했는데, 신입은 그 때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적잖게 당황했다고 한다. 보통은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주는데, 처음 본 사람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니 무슨 말인가 싶었다고.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도 선배들로부터 열심히 하지 말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직장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 하는 것이라며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는 성과로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의미로 열심히 하지 말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초반에 의욕에 넘쳐 무리하다가 자칫 지칠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어었다. 회사 생활은 마라톤과 비슷하다. 마라톤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오버페이스다. 초반에 무리하다 중간에 퍼지기라도 하면 끝까지 힘을 내서 달리기가 어렵다. 자신만의 페이스로 달려야 하는데, 자신만의 페이스를 알기까지는 충분한 탐색이 필요하다. 신입사원으로서의 자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회사 생활에서 잘 해보겠다고 오버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천천히 자신만의 페이스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야 지쳤을 때에도 쉽게 헤어 나울 수 있게 된다. 중간에 힘이 빠질까봐 노파심에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나도 예전에 그랬으니까.
하지만 열심히 하지 말라는 말은 오버페이스에 대한 우려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짜로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회사 일을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나를 잃어버리고 지낼까 걱정됐다. 회사에서의 삶과 나의 삶을 동일하게 생각하며 여기에서의 생활에 매몰될까도 걱정됐다.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과거에 그런 우를 범해 후회했던 일들을 신입사원이 반복하지 않았으면 했다.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라는 생각을 갖고 회사에서의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 일을 하되, 회사 밖에서 나의 영역을 가꿔 가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했다.
책 <퇴사 말고 휴직>에서 아쉬운 점에 대해서도 한 번 이야기 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내가 만나는 사람 5명의 평균이 나를 정의한다.’ 드롭박스Dropbox의 창 업자 드류 하우스턴이 2013년 MIT 졸업식 축사에서 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회사 선후배, 동료들과만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점 이었다. 그러다 보니 직장 안에 내 생활이 매몰되었고 개인적인 발전을 하지 못했다. 휴직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문물을 경험했다. 쇄국정책을 고집하던 내게 신문물은 엄청난 자극이 되었다.
<퇴사 말고 휴직 중에서>
신입사원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른 후배의 입에서 내가 쓴 책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와 버렸다. 민망하지만 신입사원은 내 이름을 검색해보며 나의 블로그까지도 찾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글로 풀어보게 되었다. 내가 쓴 글을 읽을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로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글로 풀어봤다.
더불어, 신입사원이 회사에 잘 적응하면서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다.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을 뚫고 어렵게 들어온 만큼 이곳에서의 생활도 단순한 밥벌이 시간이 아닌 개인적으로도 의미있는 시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신입사원에게 가끔씩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기도 하다. 너무 큰 욕심일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