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말과 상관의 말에 대하여
상관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리더는 의욕이 샘솟게 한다.
상관은 책임을 추궁하고
리더는 문제를 해결한다.
상관은 ‘해’라고 말하고,
리더는 ‘합시다’라고 말한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시다 중에서)
회사 사람들과 한 달에 한 번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 한 권씩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인데 이번 달에는 코로나로 인해 줌을 통해 모임을 진행했다. 회사 연수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직원들과 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회사 사람들과 줌을 통해 사적인 만남을 가지니 신기했다. 그동안 회사 밖 사람들과의 소통 창구로만 줌을 활용했는데, 뭔가 색다른 기분도 들었다. 회사와 부캐의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
신기한 기분을 느끼며 강원국 작가님의 책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시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강원국 작가님의 개인적 경험과 깨달음이 잘 정리된 이 책을 참여하신 분들도 다들 좋아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하면 어른답게 말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할 수 있었다. 서로 책 속의 인상적인 문구도 나눴는데, 나누는 과정에서 세 명 모두 똑같은 부분에 줄을 그어 놓았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리더와 상관의 차이에 대한 문구였다. 회사 안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유사한 안타까움을 경험하기 때문에 이 말에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씁쓸했다.
의욕이 샘솟게 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 '합시다'라고 말한다는 리더에 대한 작가님의 설명을 읽으면서 과연 리더와 상관의 진짜 차이는 무엇일까를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리더와 상관의 가장 큰 차이는 "We"와 "I and You"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내가 만나서 우리가 되는 것이지만 만나서 우리가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와 그것을 철저히 분리하느냐에 그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리더는 we를 강조한다. 팔로워와 본인을 구분짓기 보다는 함께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상관은 ""You and I"를 중요하게 여긴다. 너와 나를 철저히 구분해서 본인이 해야 하는 것과 부하직원들이 해야 할 일을 구분하고 해야 할일을 지시한다. 그게 가장 큰 다른 점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우리 회사 임원회의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들에 대한 작은 안타까운 감정이 올라왔다. 최근에는 잘 보지 않지만, 우리 회사는 매주마다 열리는 임원회의를 직원들 PC로 생중계 해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민주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형식은 개방적이지만 실상은 지극히 관료적 회의에 불과하다. 회의 내용을 들어 보면 상관의 말들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그런 말들을 듣다 보면 괜히 서운한 감정이 올라온다. 책임의 화살이 난무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직원들을 탓하고 직원들에게 지시하겠다는 말만 나오니,그런 감정이 올라온 것 같다. 그래서 강원국 작가님의 리더의 말에 더 울컥한 것 같기도 하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강원국 작가님의 글귀를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회사 "상관"들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올라왔다. 그런데 원망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부끄러운 감정으로 연결됐다.
최근 우리 팀으로 6개월차 신입이 들어왔다. 옆 팀에서 근무했는데 이번 인사 이동으로 우리 팀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6개월차 신입이지만 손도 빠르고 머리도 명석해서 일도 잘 처리하고 있다. 예의도 발라 선배들에게 잘 해서, 이것 저것 챙겨주는 중이다. 그런데 리더의 말을 생각하다 보니 과연 내가 이 후배에게 리더로서 말을 하고 있는건가라는 반성이 들었다. 이것저것 챙겨준다고 하지만 정작 내가 한 말 속에는 꼰대스러움이 영롱하게 녹아져 있는 듯 싶었다. 이것 저것 하라고 지시하는 것만 많은 듯 보였다. 선배로서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에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실상은 나도 상관인 것 같았다.
그렇게 보니 과연 내가 남을 탓할 자격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물론 내가 완벽해야 남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리더로서 말한다는 게 원래부터 쉽지 않은 것이고 회사 임원들 또한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변명같은 고충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측은지심까지 올라왔다. 내가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그들이 그렇게 하는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고 하면 너무 비겁한 변명일까?
한편으로 신입과의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 조심해야겠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후배가 이것저것 자기 의견을 말하는 과정에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예의 있게 자신의 생각을 잘 말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내가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반성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내가 불만을 갖고 있는 회사 임원들도 이런 예의 바른 의견을 들었다면 스스로 리더가 되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그들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할 수 있을텐데 건드려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분명 그들도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얼마 전 회사에서는 MZ세대 직원들 대상의 설문 조사를 했다. 나는 안타깝게도 설문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보고서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재미난 인사이트들이 보였다. 행간의 의미를 보면 직원들이 어떤 곳에 불만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걸 의식해서였는지 회사 임원들도 코로나 상황이지만 적극적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듯 싶다. 최근 우리 임원은 본부 전체 직원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단체 메일까지 보냈다. A4 한 장을 빽빽이 채운 메일을 읽으면서 부사장 또한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물론 메일 내용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사그라들었던 건 아니었지만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리고 나는 그 메일을 받고 용기내어 답장을 보냈다. 당일에는 감정이 격해졌기에 그 감정을 누르고 다음날 보냈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내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예의를 지켰다.(내 수준에서의 예의라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땠을지는 모르겠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why를 납득시켜 달라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곧장 고맙다는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뒤로 우리 부사장의 행동이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리더같기 보다는 상관같은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노력이 헛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도 후배가 던져준 자신의 의견을 듣고 생각을 한 번 더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부사장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을 거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리더를 원한다면 불평하고 불만을 품기 보다는 진짜 이야기를 건네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힘들고 어렵고 또 그것이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예의를 갖춰 내 마음을 전한다면 그들에게도 분명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상관과 일하는 게 안타깝다면 그 상관이 리더가 될 수 있는 길을 후배들이 열어 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 아닐까? 물론 왜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해야 하냐고 억울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적어도 내 직장생활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면 덜 억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낙숫물이 돌 뚫듯이 분명 우리가 던지는 작은 돌멩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제발) 그리고 그게 직장에서 우리가 리더를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제발)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직장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제발) 우리 같이 그렇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