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일기를 마무리합니다.
며칠 전, 회사 포털을 들어가려는데 인증서가 만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할 지 몰랐다. 주변 동료들도 이런 메시지는 처음이라며 의아해 했다. 결국 여기저기 알아본 후 IT 담당자의 원격 지원까지 받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원래는 이런 메시지가 안 떠야 정상인데, 나의 경우 뭔가 세팅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작은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회사랑 안맞는 거 같다는 사실을.
잠깐의 해프닝 덕분에 나는 1년이 지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복직하고 벌써 1년이 지났다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특히 지난 한 해는 무궁화 열차를 타다 KTX로 갈아 탄 듯한 느낌으로 살았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월급루팡으로 살고 싶었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다행히 야근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업무 시간 중에는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퇴근을 하고 나서도 나만의 "일"들을 해야 했기에 여전히 분주했다. 돈을 벌지는 못해도 내가 사랑하는 인터넷이라는 일터에서 글도 쓰고 사람들과 접속하며 지냈다. 다행이었던 건, 바쁜 시간이었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꾸준히 달리기를 하고 채식으로 몸을 좋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마등처럼 1년을 휘리릭 훑어 보니 그래도 그럭저럭 잘 버틴 느낌이다.
지난 1년 동안 다시 회사원의 삶으로 돌아오면서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타이틀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타이틀은 바로 "마케터"다. 물론 고작 1년 그 일을 했다고 스스로를 "마케터"라고 칭하기에는 아는 것도 별로 없고 현장의 경험도 일천하지만 감사하게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마케팅이라는 일에 흥미를 붙이게 되었다. (물론 그 흥미는 일시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사실 그동안 지인들로부터 마케팅 업무가 더 맞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듣곤 했다. 하지만 나는 마케팅 업무가 크게 끌리지 않았다. 마케팅 보다는 회사 내 주된 업무인 전략기획 같은 업무를 해보고 싶었다. 핵심 부서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그래야 회사 내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떤 이유인지는 명확지 않지만, 확실한 건 그런 일을 해야 있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애석하게도 그쪽 업무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마케팅 업무를 맡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복직을 하면서 희망 부서를 지원할 때도 연수 쪽을 선택했다. 회사 밖에서 하고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들과 연수 업무를 결합시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마케팅 부서에 배치 받게 되었다. 물론 차순위로 마케팅 부서를 지원해서 그렇게 배치를 받았던 것 같긴 했지만 17년 만에 처음으로 마케팅이라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 회사는 기존의 경력과 관계없이 사람을 배치하는 것일수도 있고, 나의 커리어가 전문성이란 1도 없다는 증거일 수 있어 조금 씁쓸했지만.
초반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우왕좌왕 했다. 하지만 데이터도 만져보고 외부 업체와 만나서 새로운 행사도 기획하면서 이 일이 꽤나 흥미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나 혼자서 쥐락 펴락 할 수 있는 것도 내게는 꽤 큰 기회였다. 회사의 중심 업무가 아니다보니 나에게 많은 자율성이 부여되었고, 덕분에 다양한 프로모션을 하면서 일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회사 일이 재밌기만은 한 건 아니었다.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자주 있었고, 소위 말해 "빡치는" 상황도 여러 번 맞닥 뜨렸다. 조직 내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겪을 때에는 내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직 기간 동안 자기계발을 하며 심신을 수양했다고 했지만 말짱 도루묵 같다는 느낌이 들어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었다.
가장 크게 힘들었던 것은 "인정욕구"였다. 회사에 대해서 초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인정 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열심히 일하면서 즐긴다고는 했지만 그런 상황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 내 가치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혹자는 인정 욕구가 개인의 성장을 도모한다고는 하지만, 나로서는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이 달갑지는 않았다. 그런 것에 초연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보면 회사 생활이 참 녹록치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휴직을 하며 얻은 것들 덕분에 복직을 하고 나서 잘 지낼 것 같았는데, 쉬고 왔어도 힘든 부분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앞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일이 재미있었다는 점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재미나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매운 맛만 있었더라면 힘들었겠지만 간간이 나를 자극하는 단맛도 신맛도 적당히 버무러져 있었기에 아주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즐기며 잘 버텼고, 버티며 잘 즐길 수 있었다.
이제 일터에서의 1년의 삶을 마무리 하며 지난 1년간 써왔던 복직일기를 마무리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회사 일에 대해서 스스로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1년 동안 글을 썼다. 힘들다고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는 공감을 해주길 바랐고, 즐거워 하는 부분에서는 자신의 일에서도 재미난 것들을 찾아 봤으면 했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썼지만 정작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덕분에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좀 더 최호진스럽게 일하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큰 조직에서 누구든 내 자리에 와서 나만큼 일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나의 개성과 열정을 잘 버무릴 수 있기를 바랐고, 조금씩 그 개성이 녹아 들어 가는 것 같아 감사하다. 아마 꾸준히 복직일기를 쓴 덕이 아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잘 버티면서 동시에 잘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직장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기에 버텨야만 한다는 명제에 빠지진 않았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즐기는 것들이 하나 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음 좋겠다. 소소한 것이든 대단한 것이든 내가 만들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주든 즐거움을 찾으며 버티길 바란다. 하루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생활이 너무 우울하지만을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