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지만 함께 일합니다.
아침 8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합정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다. 엄청난 출근 인파를 뚫고 환승통로를 지나갈 때는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한다. 코로나라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어째든 나도 엄청난 무리 속에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
당산역, 신도림역을 거쳐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내린다. 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많아 역을 빠져 나가는것도 쉽지가 않다. 한무리의 출근족에 끼어서 겨우 개찰구를 건너, 역 3번 출구로 나와 사무실로 간다. 나는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내가 출근족에 끼어서 가는 곳은 우리만의 사무실이다. 3월부터 나는 주 3회 정도 구로디지털 단지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한다. 사무실은 세 명이 힘을 합쳐 구한 장소다. 3년 전 휴직 때 인연을 맺은 분들과 돈을 모아 작은 사무실을 구했다. 그리고 책상과 집기류를 놓고 우리만의 공유 오피스를 꾸렸다. 그곳에 가서 글도 쓰고, 워크숍도 준비하고, 새로운 일도 기획하는 중이다.
당연히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 왔다 언제 가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8시에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선택이다. 어쩌면 직장인 DNA가 몸에 배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9시에 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게 익숙해서랄까?
나의 아침 루틴 때문이기도 하다. 아침 루틴인 달리기를 포기할 수 없어서다.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씻고 나면 딱 이 시간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몸은 조금 힘들더라도 직장인처럼 8시에 집에서 나서게 된다. 퇴근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이런 저런 일을 하고 나서 보면 6시 즈음이 되어 있다. 중간에 노는 시간도 많지만 대충 6시 정도가 되면 집에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퇴근도 수많은 직장인들 사이에 끼어서 하게 된다. 직장인처럼.
직장인들에 끼여서 출근하고, 퇴근하는 다소 피곤한 루틴을 이어가고 있지만 우리만의 공유 오피스에서 일하는 시간이 나는 참 좋다. 가장 좋은 것은 같이 이야기 나누는 동료가 있다는 점이다. 프리랜서로서 지내보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장 크게 걱정되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혼자서 일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외향형 인간인 나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물론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계속 만나기야 하겠지만 지속해서 나를 지탱해줄 동료같은 인간관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 게다가 옆에 있는 "동료"들은 지난 3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함께 나눈 사이다.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도 나눴고, 버킷리스트도 썼고, 마인드맵도 그려봤다. 그래서인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어 더 든든하다. 각자의 일을 하면서 티타임도 갖고 점심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덕분에 처음 나서는 프리랜서의 새계에서 연착륙할 수 있었다. 비록 각자 하는 일이 다를지언정.
어딘가 정박해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것도 큰 효과다. 출근할 수 있는 사무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나의 마음을 잡아 준다. 오랫동안 직장을 다녀서 그런지 이런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오히려 편하다. 덕분에 일과 쉼의 경계도 형성된 느낌이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집은 쉬는 곳이라는 구분이 더 확실해진 느낌이랄까?
물론 우리 셋이 각자의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협업을 할 때도 있다. 우리가 사무실을 얻으면서 같이 읽었던 책은 "도쿄R 부동산 이렇게 일합니다"였다. 이 책에 영감을 얻은 우리는 도쿄R 부동산의 협업 방식을 따라해 보기로 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77205253
서로의 관계를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가 아닌 독립된 1인 기업가로 규정했다. 각자가 각자의 일을 하다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서로 협업을 하는 것으로 관계를 정리했다. 필요한 부분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하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돕고 있다. 물론 그냥 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구두로 정리하더라도 분명한 "Give & Take"를 정의하고 협업을 하고 있다. 도와줘야 하는 일을 명확히 정리하고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를 확실히 하고 간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협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기 보다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 확실한 보상을 만들어 가면서 일하는 중이다. 아직은 극초기 단계라 서로 조율해야 하는 것이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1인 기업가로서 살아갈 예정이다. 회사에 다시 취직할 생각은 "당분간" 없다. 그렇다고 직원을 고용해서 사업을 할 생각도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자신이 없다. 누군가의 생계를 책임질 정도로 규모있는 사업을 운영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바로 1인 기업가다. 나 혼자 자유롭게 비즈니스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즐기며 돈을 벌고 싶다.
하지만 1인 기업가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꺼이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더 효율적이라면 언제든 손을 내밀 예정이다. 도와달라고 말이다. 그 속에서 다른 1인 기업가와 연대를 구축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비즈니스를 꾸려가고 싶다. 물론 그 연대는 일반적인 기업에서의 연대와는 달리 조금은 느슨하게 만들어 갈 예정이다. 협업이 어렵다면 언제든 헤어질 수도 있는 Cool한 관계가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 옆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동료들은 1인 기업가로서의 연대의 시작점이다. 그리고 나는 매일 연대의 힘을 느끼며 우리만의 공유 오피스로 출근하는 중이다. 직장인들에 끼여서 직장인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