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새로움

by 서향록

빛의 기록은, 마음이 움직였던 순간의 증거입니다.

2008년,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거리의 소음과 빛, ‘이웃집 토토로’에서만 보던 주택 단지, 시부야 스크램블을 가득 메운 사람들… 옆 나라 도쿄에서, 저는 황홀한 무기력감에 빠져 있던 자신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다시, 그곳 도쿄로 향했습니다. 사진과 영상을 남기기 위해서 였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을 붙잡아, 시각적으로 구현해보고 싶었던 저는, 오후의 햇살이 그려낸 은행나무 그림자, 똑같은 모자를 쓴 초등학생 무리… 그런 장면들을 서슴없이 담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저만의 여행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외장하드 속에는 어느새 셀 수 없이 많은 기록들이 쌓여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그 감정이 또렷해진 건, 교토를 여행하던 어느날이었습니다. 고즈넉한 골목에 은은하게 퍼진 홍등, 그 빛이 닿은 붉은 기둥 아래 셀카봉을 든 여행자들 사이에서 저는 문득 멈춰 섰습니다. 무언가를 담으면 담을수록, 오히려 ‘진짜 여행’은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의 황홀한 무기력감은 사라졌고, 나의 시선을 공유하기 위해 들었던 카메라는, 어느새 나의 시야를 가리는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방 속엔 상황별로 바꿔 쓸 장비와 렌즈가 가득했고, “이것도 찍어야 해, 저건 놓치면 안 돼.”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랜드마크와 관광지를 찾아다니기 바빴습니다. 저는 ‘보여주기 위함’에 저 자신을 재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무거운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가벼운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계획도 목표도 없이, 그저 도시의 소음과 빛, 그림자에 이끌리는 대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기억한 다음, 다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찍은 영상들을 조용히 나열하고, 음악을 얹고, 당시의 감정을 수필을 쓰듯 자막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방황을 계획한다’라는 주제 아래, 저의 첫 에세이 필름, 〈새로운 새로움〉이었습니다.

https://youtu.be/alTBuY4SdIU?si=Rvso5Zf5-B0P5-jB


이 작업은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욕망’과 ‘간직하고 싶은 감정’ 사이에서 솔직한 시선을 찾아가려는 시도는, 결국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 등 다양한 작업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카메라를 듭니다.


빛을 탐구하고, 공간의 감정을 읽고, 자연의 순간을 조용히 채집해 그것들을 제 언어로 엮어냅니다. 그러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이번 ‘에세이 필름’ 강의에서는 제가 영상 작업을 하며 겪은 작은 발견들, 그리고 그 감정들을 어떻게 영상으로 옮겨왔는지를 함께 천천히 나누고자 합니다. 이 강의는 화려한 장비나 기술을 다루지 않습니다. ‘나’라는 시선을 어떻게 기록하고, 그것을 어떻게 영상으로 빚어낼 수 있을지에 집중할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순간을 오래 붙잡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당신에게,
그 소중한 기억을 ‘에세이 필름’이라는 방식으로 남겨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서향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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