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각 렌즈가 시야를 넓히고 원근감을 과장해 보여준다면, 망원 렌즈는 그 반대의 방식을 택합니다. 멀리 있는 피사체를 눈앞으로 끌어당기고, 앞뒤 배경은 흐릿하게 겹쳐지며, 거리감은 모호해집니다. 그렇게 납작하게 눌린 세계는 압축된 공간 속의 피사체를 더욱 도드라지게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망원 렌즈는 내가 보는 시야의 층을 하나로 겹쳐버리는 장치입니다.
보통 50mm 이상부터 ‘준 망원’이라 부르며, 수치가 높아질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배경은 더 격렬하게 눌립니다. 135mm를 넘기면, 멀찍이 떨어져 있던 피사체조차도 한 화면 안에서 숨 막히게 당겨집니다.
이 '거리의 왜곡'은 때때로, 현실보다 더 진실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팽팽하게 대립하는 인물의 대화. 일렬로 선 군인들 중 단 한 명에게 잡힌 초점. 혹은 멀리서부터 돌진해오는 괴물이 어느새 주인공의 등 뒤를 덮칠 듯한 기묘한 착시.
모두 망원 렌즈가 만들어낸, 밀도의 연출입니다.
그래서 이 렌즈는 민감합니다. 좁은 프레임 안에서 카메라가 조금만 흔들려도, 배우가 반 발짝만 옆으로 나가도 구도가 흐트러집니다. 망원 렌즈는 연출자와 배우, 양쪽이 숨을 맞춰야 가능한 정밀한 협업의 도구입니다.
배경은 지우고, 단 하나의 피사체만을 남기는 아름다운 마법. 그래서 우리는 자꾸 이 렌즈를 꺼내 들고 싶어집니다.
저는 예전에 명동 한복판에서, 서로를 공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녀를 망원 렌즈로 담은 적이 있습니다. 퇴근 시간의 인파 속에서, 배우를 따로따로 세웠습니다.
먼저, 남배우의 옆모습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흘러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남배우만 또렷하게 살아났습니다.
다음 컷에서는 여배우의 정면을 같은 방식으로 담았습니다. 마치 흐려진 인파를 뚫고, 서로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 명동의 한복판에서도 두 사람만 외롭게 남겨진 듯한 장면의 저의 의도였습니다.
망원 렌즈는 그렇게, ‘무엇을 지울지’, ‘무엇을 남길지’를 단호하게 결정하는 렌즈입니다.
https://youtu.be/vBhVeJVPT8A?si=rqzAdopcIWk3QDJn
그런데, 이런 시선을 온전히, 최대치로 경험하려면 결국 좋은 장비가 필요합니다. *풀프레임 센서, 고화질 바디, 그리고 ‘백통’이라 불리는 70–200mm 렌즈를 동반해야합니다. 거기에 장시간 촬영을 위한 삼각대까지. 정말 말도 안 되게 무겁고, 기가 막히게 비쌉니다.
한때 저 역시 그것을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괜히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가는 못된 친구처럼 느껴지기 시작해서 결국, 매각이라는 절교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명확한 기획이 있을 때만 이 렌즈를 꺼냅니다. 센서가 작은 카메라로 바꾸는 대안도 있었지만, 결과물에 만족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꼭 필요한 장면이 있을 때, 아주 큰 맘을 먹고 렌탈을 합니다.
그 만큼 이 렌즈는 유혹입니다. 강렬하지만 부담스럽고, 아름답지만 멀리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망원의 마법으로 무언가를 당겨본 사람은 이 렌즈를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이 렌즈는 신중하게 써야 할 유혹입니다. 그 깊은 시야, 매혹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보고 싶으신가요?
*풀프레임 센서는, 대부분의 카메라 중 센서 크기가 가장 큰 축에 속합니다.
크기가 큰 만큼 빛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인물은 선명하게, 배경은 부드럽게 날리는 ‘심도 표현’이 뛰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