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하긴 하지만 별로 연락하지 않는 후배라 반가운 마음 반 걱정 반으로 전화를 받았다.
" 잠깐 나올 수 있어요?"
목소리가 너무 어두워서, 일단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술을 한잔 마시고 싶다는 후배와 함께 호프집에 들어섰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지 않은 채 후배는 자리에 앉자마자 술을 두세 잔 연거푸 마셨다.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해요."
후배는 여자 친구에게 꽤나 잘하는 편이었다. 자주 만나고, 자주 데리러 가고 연락도 제법 잘하는 편이었다.
이유를 아냐고 물어보자, 후배는 꽤나 길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제가 가진 것들이 부담이 된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황은 이랬다.
여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집도 못 사는 편이었다. 졸업 후 한동안은 이곳저곳 술 마시고 놀러만 다녔고 제대로 된 연애도 일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후배를 만나기 전 한 남자와 3년 정도의 연애를 했고 결혼을 원하는 여자에게 제대로 된 이별통보도 없이 헤어져 버려 , 상처를 많이 입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후배를 만나고 연애를 하게 되었다.
남자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부모님이 대기업에 다니셔서 형편도 어느 정도 넉넉한 편이었고, 대학을 졸업했으며 큰 기업은 아니었지만 이미 적절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
문제는 둘이 사귀기 시작하고 둘이 각자의 환경에 대해서 조금씩 이야기하고 난 후부터 시작되었다. 여자는 술을 마시면 종종 남자에게 ' 난 너만큼 잘 나지 못했어'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여자는 본인의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너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남자에게 서운함을 이야기했다. 결혼을 일찍 하고 싶다고 조르는 한편, 조금이라도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바로 ' 너랑은 안될 것 같아'라고 이야기를 했다.
헤어지고 싶지 않은 남자는 여자에게 싫은 부분이 있어도 쉽게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가끔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여자는 바로 '그런 걸 가지고'라고 응대했고, 남자가 서운해하면 '나는 너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화를 냈다. 화를 내면 헤어지자는 뉘앙스를 풍겨 결국 남자는 여자를 달래야만 했다. 그렇게 몇 번이 몇 달이 되었고, 남자도 여자도 점점 지쳐갔다.
남자는 가지지 못한 것이 많은 여자가 안쓰러웠다. 그것을 채워주고 이해해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남자도 가끔 힘든 일이 생길 때가 있었고, 그것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쌓아두기 었고 그것이 답답했다. 가끔은 여자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여자는 그런 남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날 소소하게 다투던 여자는 결국 남자에게 변했다 라는 이야기와 함께 헤어짐을 통보했고, 그동안 지쳐있던 남자는 마음이 아프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나왔다.
위와 같은 상황을 한 번쯤은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상대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듯한 말과 행동을 하면서 상대가 자신을 안쓰러워하고 더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이용함으로 상대보다 자신이 더 우위에 서있다고 느끼기를 원한다. 나보다 가진 것이 많은 저 사람이 나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아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대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을 제일 불쌍하게 여기기 때문에 누군가의 아픔이나 힘듬에 공감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평범했던 사람도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되면 점점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 이 사람들은 반대로 상대를 감싸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게 된다. 나보다 좋지 못한 상황의 사람이니까 내가 더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게 된다. 결국 자신의 힘든 점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고 일방적으로 받아주고 맞춰주어야만 하는 상황만이 생긴다. 자신의 연민과 상대방의 '띄워주는 듯한' 공격성이 결국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된다. 지치고 힘들지만 상대는 나보다 '약하기 때문'에 헤어지자는 말도 먼저 하기 힘이 든다. 결국 서로 승자 없는 싸움만 계속하게 되는 거다.
관계가 일방적으로 흐르게 되면, 마음을 굳게 먹고 선을 그어야 한다. 나도 힘이 들고 내 힘든 점을 함께 공감해달라고 표현을 해야 한다. 너의 그런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이야기하고 나의 감정을 충분하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계속 스스로의 아픔을 드러내면서, 나를 띄워주는 - 예를 들면 너는 가정형편이 나보다 낫잖아라던가 너 정도만 되었어도 좋겠어 같은 - 말로 공격한다면 과감하게 자리를 떠나야 한다. 그 대화는 더 이상 좋게 유지되기 힘들다. 한 걸음 떨어져서 하루 이틀 시간을 갖고 정리해 본다면, 상대가 얼마나 나의 자존감을 끌어내리고 있는지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보통 첫 대화 시도가 실패하고 나서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내가 매달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매달리지 않는 경우 바로 헤어짐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먼저 대화를 시도하면서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상대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아야 한다. 만약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느끼고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고 고칠 의지가 있는 거다. 그럼 서로 다시 충분히 감정을 이야기하고 관계를 고쳐나가도록 노력해 가도 괜찮다. 그러나 두 번째 대화에서도 자신의 힘든 점을 어필하고, 자신에게 매달리지 않는 상대를 탓하는 행동을 보인다면 그 관계는 더 이상 유지해 나가야 할 필요가 없다. 어설픈 배려와 연민은 연인관계에서는 독이 된다. 일방적으로 내가 상처 받고 있다고 느끼면 그 관계를 정리 하자.
자존감은 상대에 따라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한다. 특히 연애와 같이 감정과 생각을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일수록 더 그렇다. 상대에 따라 순간적으로 자존감이 사라진다고 해도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는 없다. 그전까지 자존감이 있던 사람이라면, 나의 자존감을 낮추는 사람을 멀리함으로 금세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좋지 않은 관계는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 해야 할 일
- 상대가 나를 비난하거나, 혹은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하한다면 올바른 관계인가 생각해보기.
- 자존감이 점점 떨어진다면, 감정보다 이성으로 관계를 돌아보기.
-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에게 더 좋은지 판단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