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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Feb 29. 2024

순수한 위로

민감하고 슬픈 사항 1.

  어릴 적, 할머니의 장례를 경험했다. 내게 할머니는 맞벌이로 바쁘신 부모님 대신이었고 작았던 나의 세상의 전부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날 며칠을 촛불을 켜고 할머니 영정 사진 앞에서 울다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채 7살이 되기 전 기억이지만, 그 슬픔이 어두운 방 안에 촛불처럼 또렷하다.

  스무 살을 넘기던 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요양원에 계셨던 할아버지는 외국에 나가 있던 손녀가 오기 전까지 숨을 거두시지 않았고, 아무도 울지 않던 그 병실에서 내가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자, 급기야 다른 환자 분들을 생각하셔야 한다며 간호사 분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당시에 나는 슬프면 울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충분히 슬퍼하지 않는 이들을 원망도 했었지만, 사실은 가족 모두 마지막 때에 예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도 슬픔에 잠기지 않도록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있는 힘껏 울고 나서, 동생과 나는 떡 한 말을 먹고 각자 2kg씩 쪄서 일상으로 돌아갔다.  

  

  설 당일에 고비를 맞으셨던 아버님이 하늘의 별이 되셨다. 몇 번의 장례식을 경험해 보았지만, 직접 장례를 치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장례에서 결정할 사항들이 줄을 서 있고, 특히 나의 신념과 다른 종교장을 지내야 했을 때 그 혼란스러움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광야에 놓인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진 슬픔을 떼어내어 던져두고, 해야 할 일을 위해서 일단 걸어야 하는 기분. 나는 가족들에게 위로받고 위로 주고 싶었지만, 정작 위로를 받았던 것은 물리학자 김상욱의 말이었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원자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럼 그 원자는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기도 하고, 우리 주변을 돌거나 혹은 정말로 별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아버님이 하늘의 별이 되셨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번의 전염병과 위기를 맞으면서 우리의 장례 문화는 아주 많이 바뀌었다. 더는 밤새워 제를 지내지 않고, 조문객도 많이 받지 않으며, 장례의 형태도 유교 형식을 많이 벗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장례식장 한편에 놓인 신문에는 ‘한국의 장례문화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기사가 놓여있고,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온 화환들이 복도를 메우고 있다.   


  장례 둘째 날, 아버님 영정 사진 앞에서 제사를 지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하겠다고도 하지 않겠다고도 할 수 없었다. 만약 내 장례였다면, 나는 아무도 울지 않고, 찬양을 틀고 디스코라도 추라고 했겠지만, 아버님의 유언대로 라면 나는 제사를 지내 드려야 마땅할 며느리였다. 죄스러움으로 점철된 나에게 그 질문은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이런 고민을 해?’ 하실 수도 있겠지만, 세상은 정말로 아직 변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분명 큰 과도기를 겪고 있음에 틀림없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현실을 쫓아가면서, 또다시 전통을 지켜야 하는 그 어디 중간쯤에 서있는 것이다.

  ‘그럼 그냥 좀 하면 되지? 뭐가 그렇게 어려워?’라고 하면 난 또 죄인처럼 입 다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 만 명의 며느리들이 울며 불며 이겨낸 그 세월을 나 같은 한 사람이 한다 못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사건 이후로 장례식은 큰 슬픔과 작은 분노들로 뒤섞여 있었다. ‘제사는 정성이야, 형식이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가, 영정사진이 사라진 일로 분노했다가, 또 아버님이 별이 되셨을 것이라는 말에 깊은 상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화장터에서 모든 슬픔이 타 들어갔다. 함께 했던 모든 가족들이 슬퍼했고, 각자의 입장과 의견 따위가 그 의미를 잃어 눈물로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일곱 살 난 딸은 그날 처음 본 고모 할아버지부터 젊은 고모에 이르기까지 한 명 한 명 다 안아주었다. 우리는 그 아이의 황당함(?)에 웃다가, 다시 울다가 웃기를 반복했다.   


  아버님은 남은 우리가 서로 미워하지 않고 잘 지내기를 바라실까 아니면 싸우더라도 제사를 지내 주기를 바라실까. 아직은 슬퍼하길 바라실까 아니면 빨리 보내 드리길 바라실까.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만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민하고 번뇌하는 내가 이상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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