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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Mar 14. 2024

매일 아침 러닝 머신 위에 오른다.

노래하면서!

  아침에 밥하고, 애들 등교시키고, 청소하고, 러닝 머신을 뛰다가 갑자기 20년 전 일이 떠올랐다.  

  ‘한국은 마약도 없고, 총 소지도 안 된다고? 와, 정말 살기 좋겠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어른들께 들었던 말이다. ‘대신 우린 다른 살기 힘든 이유들이 많아요…’라고 속으로 답했고, ‘경쟁사회’때문에 내가 도피성 유학에 올랐다는 말도 함께 삼켰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고, 다 똑같이 힘든 건데, 왜 그렇게 징징 거렸을까 생각해 보면, 여전히 이유는 같다. 사는 재미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게 바쁘고 힘들다. 하나 같이 힘들고 답답한 일들만 있어서 긍정회로를 아무리 굴려보아도 숨이 막혔다. 그때보다 20년 정도 더 나이를 먹었는데도, 아침에 눈 뜨는 것이 힘들고, 여전히 정신없이 뛰어다니기에 호흡이 딸린다.


  이게 다, 경쟁 그놈의 경쟁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는 전교 몇 등 안에 들어야 하고, 또 대학 가서는 몇 점 이상 받아야 하고, 그 담엔 대기업에 취업해야 하고, 결혼도 빨리 해야 하고, 애도 둘은 낳아야 하고, 집은 수도권의 좋은 집, 물려줄 집 하나 더……남들 다 똑같이 사는 이 굴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때마다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지다 못해 곤두박질쳤던 이유도, 진짜 하고 싶은 글쓰기를 잘 접어서 마음 저편에 꽂아만 두었던 이유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발악하는 이유도, 내 몸 하나 돌보지 못하면서 어느 것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사실은 전부 마음 밭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그 마음 밭은 나만 가꿀 수 있는 것이다. 나만 이랑을 파고, 씨를 심어, 크게 키우던 작게 키우던 내 소신껏 원하는 대로 키워야 하는 것인데, 여태껏 제대로 돌본 적이 없으니, 아마 잡초만 무성함이 틀림없다. 이제 마음 밭의 존재를 알고, 나를 돌보고, 그러려면 집을 사려고 하기보다는 건강을, 또 가족을 우선시하고, 나를 포함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우선순위와 밸런스를 맞추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잡초가 무성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10년 전쯤 생각해 낸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것이 각자도생, 그러니까 무시하고 내 삶 사는 것이었다. 지지난 번 대통령 선거가 있은 후, 시댁 어른들이 아주 뚜렷한 색깔을 띠시고 조카며느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는 ‘아, 저는 필리핀이나 베트남으로 이민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작은 아버님이 되묻자, 작은 어머님이 ‘우리나라에 살기 싫다는 소리잖아요, 으이그’ 하셨다. 그랬다. 각자도생 하고 싶었지만, 정치 종교는 삶의 완전한 일부(밥상머리에서 늘 나오는 이야기)였고, 다 무시하고 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떠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 살기 싫었고, 사실 여전히 벗어나지 않으면 내 삶을 꾸릴 수 없는 것인가 하고 고민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모든 이들에게 각자의 지옥이 있듯,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살기 힘든 이유가 있고, 결국 문제는 내 마음 밭에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버렸다는 것이다(물론, 먹고 살길이 없어서 못 떠나는 이유도 크다.).   


  그럼 떠날 수도 없고, 경쟁이라는 놈 때문에 죽겠고, 난 어떡하지? 나는 먹고사는 문제보다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한 사람이고, 빵보다 책이 중요한 사람이다. 예체능은 취미로나 하는 것이라는 사람들 틈바귀에서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듣고, 글도 쓰는 사람이다. 말만 사교육을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교육 보다 엄마(가 하는) 교육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먹고살려면 적당히(?) 공부해서는 살아남기 힘든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애들을 키워야 하지? 이제야 내 마음 밭의 존재를 알았는데, 애들 마음 밭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질문이 꼬리의 꼬리를 문다. 끝이 없게 생각하다 보니,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다. 나는 아직도 러닝 머신 위에 있었다. 내 몸도 내 생각도 러닝 머신 위에서 내려와야 한다.

  에잇, 접자, 생각 따위. 노래하는 사람은 악하지 않아, 노래하는 사람은 웃어넘길 수 있어. 하고 시를 끄적이다가,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라는 글귀가 생각이 났다. 한 참을 시를 쓰고 보니, 어느새 솥에 밥을 안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애들 든든하게 저녁밥 먹이고, 다 같이 한바탕 뛰러 운동장으로 갔다. 공도 차고, 탁구도 치다가, 같이 웃었다. 내일 또 하자며 돌아서서 깨끗이 씻고, 누워서 책을 읽었다. 자기 싫은 아이는 ‘한 권 더…한 권 더…’하며 밤새 책을 읽으려 했고, 나는 일찍 자야 내일 더 많이 놀 수 있다는 건강한(?) 잔소리를 날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묵묵히 배우는 남편이 있었고. 그렇게 나는 간신히 또 오늘을 났다.


  매일 아침 러닝 머신 위에 오른다. 내일도 간신히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 지금은 노래할 수 있으니까. 같이 웃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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