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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Mar 22. 2024

봄, 사랑, 벚꽃 말고, ‘인내’?


  마침내 봄이 왔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이곳저곳에서 벚꽃과 사랑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나라 걱정 하다가 갑자기 무슨 사랑타령이나 하시겠지만, 우리가 결코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이 여기에 있다.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우리 민족이 풍류를 즐기게 된 것은 침략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말은 즉슨, 아플수록, 혹은 힘들수록, 웃고 즐겨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우리 나름의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이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유희, 혹은 코미디들은 진지하고 솔직한 감정들을 비난하게 한다. 누군가 너무 슬퍼하거나 혹은 너무 기뻐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또 사회적 가면까지 쓰게 만드는 경우들이 종종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감정을 숨기는 것에서 나아가 상대방의 감정까지 부정하게 만든다. 또한 이는 가스라이팅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낳고, 그간 ‘인내’라는 이름 아래 덮어 두었던 우리의 감정들을 타의에 의해 살펴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 나라의 아줌마들이 황혼이혼을 생각하고, 이혼하기 죽기보다 싫지만, 이혼으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갖는 것 또한 이 점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주로 ‘봄’에 ‘사랑’해서 결혼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그다음 해 봄을 맞기도 전에 끝나는 경우가 요즘에는 허다하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알았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에서 비롯된다. 이해와 희생, 인내하는 과정으로 그려지는 결혼은 내가 생각했던 벚꽃 빛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부 희생하고 인내하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희생하고 인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불행하기 때문에’ 결국 끝이 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어떻게 풍류를 얘기하다가 가스라이팅에, 이혼까지 왔냐고? 결국 문제는 입을 다물고, 엄한 곳(?)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는 것에 있다.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은 넘겨야 하지만, 충분히 슬퍼해야 할 일은 슬퍼하고, 충분히 화내야 할 일은 화내야 살아갈 수 있다. 괜히 우리나라에만 ‘화병’이 있다고 하겠는가? 우리는 남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솔직하지 못하다.

 

  우리 국민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프랑스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의 첫인상에 대해 얘기하면서 굉장히 예의 바르고, 안정된 느낌이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가 놀랐던 점은 한국의 영화는 대부분 폭력적인 영화가 많았고, 사회에서 억눌린 감정이 허용된 범위 내에서는 폭발하는 듯 보였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 없이 의무감, 혹은 인내와 희생만 남은 관계 속에서 우리가 그동안 숨겨왔던 우리의 진실된 감정은 어디론가 표출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직장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배우자로써의 책무와 아이들의 부모로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그것을 해내고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이나 공황장애에 시달려도, 아무리 많은 이들이 사랑 없는 결혼으로 아이들에게 상처 주고 서로 상처 입히며 헤어져도, 나에게는 오지 않을 일처럼 치부하고 참아내는 것이다. 봄은 겨울이라는 인내 뒤에 핀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치 정설처럼, 혹은 미덕처럼 여기고 있다. 그러나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이야기처럼 봄은 겨울을 인내해야 오는 것과 동시에 봄이 있어야 겨울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탄생과 사랑하는 과정 없이 고통만을 감내하는 것은 애초에 사랑이라 일컬을 수 없는 것이다.

 

  ‘너 그러다 화병 나, 얘’, ‘참지 말고 말하고 살아!’ 

  나는 친한 친구에게도 혹은 가족에게도 남편 험담을 잘하지 않았다. 그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가 병이 났을 때, 나 스스로도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이 낫구나 하고 자조했다. 심지어 암이 다 낫고 나서도 회복되지 않는 나의 몸과 마음에 대해 후유증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스트레스로 낫지 않는 것이라고 스스로 진단 내렸다. 정신이 신체를 지배한다는 말을 몸소 체험한 느낌이었다. 결국 화병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구나 하고 깨닫고 나서야, 참아 왔던 많은 말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양 빠져서(?) 하지 못했던 말들도 글에 한번 쏟아내고 나니, 용기가 생겨 가까운 친구들에게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여과 없이 쏟아낼 수 있었다. 친구는 ‘시원하다’고 했다. 살면서 내가 욕을 하는 모습을 처음 봤지만, 자기가 다 시원하다고. 그렇게 한바탕 쏟아내고 나니, 웬일인 걸 남편이 덜 미웠다. 이 좋은 걸 왜 진작 하지 않고, 인내하려고만 했을까. 그간의 세월이 후회되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한바탕 울고, 친구의 공감에 한바탕 행복하니, 또 한바탕 웃으며 사랑으로 싸울(?) 준비가 된 기분이었다.

 

  결국 결혼이라는 것은 참고 인내하면서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를 아껴야 하는 것이며, 나의 행복이 그의 행복으로 직결되고, 우리의 행복이 아이들의 행복으로 결론지어진다는 사실을 아는데에 그 답이 숨이 있다. 비록 나도  그 사랑과 전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이제, 겨울, 인내 말고 봄, 사랑, 벚꽃 하자.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아주미는 꽃을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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