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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Feb 15. 2024

설 전야제

가족인 듯 가족 아닌 듯 가족이고 싶은

  설을 맞아 작은 아버님 댁에 도착했다. 첫째 아버님은 미혼이시고, 둘째 아버님이신 우리 아버님은 병원에 계신다. 그리고 우리는 코로나 이후 아주 오랜만에 셋째 작은 아버님 댁에 모였다.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집 안에 하나뿐인 손주 며느리인 나는 작년 한 해 혈액암을 앓아 한 순간에 누워 있으면 안 될 군번에서 아픈 손가락 같은 며느리가 되었고, 집 안의 독불장군이신 우리 아버님은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하셨다. 어색한 인사와 아이들의 기쁜 목소리가 서로 뒤섞이는 사이,


도착한 지 채 30분이 되지 않은 시각, 작은 형님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 어서, 어서 병원으로 가봐, 아빠 CPR 하고 있대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나는 어버버 하며 남편을 불러냈다. 빨리 가봐야 할 거 같다고, 지금 가야 한다고.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 사이 심정지가 3번이나 왔다고 했다. 남편은 핸드폰을 쥐고 있지 않던 자신을 탓하는 얼굴로 옷을 챙겨 문을 나갔다. 남겨진 나는 부엌에서 밥을 했다. 작은 어머님들은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갈 수도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들을 좀 데려가 달라고 했다. 우리 부모님은 당장 오시겠다고 했다. 사돈 집에 그것도 결혼식 때 딱 한 번 뵌 사돈의 동생 집에 아이들을 데리러 오시라고 할 수가 없어, 또 어버버 했다. 이럴 때 나는 왜 이렇게 서툴고 어린 건지. 내가 어른이 맞기는 한 건지.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았다.  


  아버님들은 티브이를 시청하고 계셨다. 귀가 어두우신 큰 아버지는 이 상황을 전혀 못 알아차리시는 듯했다. 나는 손에 나물을 들고 왔다 갔다 했다. 내가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을 때, 큰 아가씨가 내게 좀 앉으라고 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는 병원에서 오는 전화가 싫다. 할 수만 있다면 병원에서 오는 전화는 다 차단해 두고 싶을 만큼. 내가 병원에 있을 때도 나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눈물이 목을 타고 울컥 넘어올 것만 같았기 때문에. 병원에 있어도 병원 밖에 있어도 늘 마음은 나와 함께 있지 않았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나의 마음은 아이들과 있었고, 내가 아이들과 있을 때, 나의 마음은 아버님과 병원에 있었다. 이런 마음을 누가 알아주어서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상황이 나의 새해를 빼곡하게 슬픔으로 채웠기 때문이었다. 해가 바뀌면, 전부 좋아질 것이라고, 혼잣말을 되뇌었었다. 세상은 이렇게나 차갑고 아이러니해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으니까 지나고 나면 새 아침이 밝을 거라고 말이다.  


  부엌과 거실 사이에 중문이 있는 큰 집에서 부엌은 울고 있고, 거실은 티브이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대기했다. 눈앞이 샛노랗다는 유행가의 한 소절처럼 나는 노란 불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울어야 할지, 당장 뛰어가야 할지, 혼자 있으면 안 될 거 같은데, 혼자 있고 싶었다.  


  사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 이후에 설날 풍경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아이들이 많이 컸는데 어떻게 키워 나가야 할지 따위의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아팠고, 아픈 이야기들은 과거로 두고, 좀 이상한 아줌마가 이상한 삶을 얼마나 이상하게 대처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런 유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역시 삶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게 분명하다.


  새해를 잃은 기분으로 새해를 맞은 날. 안정되셨다고 남편은 집으로(작은댁으로) 돌아왔다. 먼저 저녁을 먹어 미안한 마음으로 두 번째 저녁을 차리고, 밤에는 어른들과 고스톱을 쳤다. 돈을 잃어드렸다. 잃는 게 마땅했다. 좀 웃어야 했다. 내어 드려야 내일은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사고 싶었기 때문에. 가족의 웃음과 그리고 가족의 건강. 나는 못된 며느리도, 냉정한 아내도, 부족한 엄마도 되기 싫고, 나의 몸도 아프고 싶지 않다.

욕심일까.


조금은 다른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작년 보다 올해 좀 더 다정해지고, 올해 보다 내년에 좀 더 달라질 수 있을까. 조금 씩이라도 변하지 않으면, 이상하게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거 같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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