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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Apr 08. 2024

동네 한 바퀴

♪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동네 한 바퀴'는 외국 동요 가락에 우리말 가사를 붙인 동요다. 


‘동네’는 한자어 ‘동내洞內’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자기가 사는 집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정한 공간을 말한다. 행정 구역의 최소 단위인 동洞이나 리里보다 작은, 걸어서 '한 바퀴' 돌 수 있는 규모의 마을이다. 


옛적 농업국가 시절에 동네는 직장이자 주거지였다. 외지로 이주하는 게 지금 시대에 외국으로 이민 가는 것만큼이나 드물었던 때다. 동네 사람은 농업 현장의 평생직장 동료인 동시에 앞 뒷집 사는 이웃이었으며, 집안 어른 아니면 조카뻘이 되기도 했다. 대를 잇는 경제 공동체에서 옆집 밥숟가락 개수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개인 정보였다.

밀양 감물 마을


이제 도시에서 그런 동네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생업이 주거지를 벗어나면서 이웃 사이의 연결고리가 점점 연약해져서 아파트 옆집 사람은 '000 호' 정도로 기억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세상이 되었다. 동네 한 바퀴 도는 재미도 없어졌다. 우리네 생활에서 동네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지면서 '동네'로 시작하는 '동네 사람', '동네 서점', '동네 구멍가게', '동네 어른'의 위상 또한 덩달아서 격하되었다.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고 있다. 그럴수록 동네 사람끼리의 소통과 교류가 필요한 시대다. 동네가 자립적인 공동체로서 대도시의 베드타운 이상의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네는 재래시장이나 골목길만의 문화가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와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고 활력을 불어넣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슬리퍼를 끌고 나가다 만난 이웃집 사람과 새로운 형태의 지연地緣이, 같은 반 아이 엄마와는 건전한 학연學緣이 형성된다. 동네 조기 축구회 선수끼리 호프집에 앉아서 아내들 몰래 신상 축구화 정보를 교환하는 은밀한 재미도 있다. 


동네를 벗어나지 않고도 주민 간에 다양한 문화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의 활용이 절실하다. 사회적 인프라는 광장, 공원, 카페, 식당, 마을 장터, 도서관, 종교시설 등 지역의 여러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의미한다.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동네 시설은 어린이와 노약자 등 움직임에 제약이 있고 자율도가 낮아 사는 곳에만 묶여 있는 취약계층에게 특히 더 중요하다.


뉴욕 대학교 사회학과의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들이나 이웃들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하는 반면 낙후한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활동을 저해하고 가족이나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동네 병원'은 단순히 주거지에 있는 병원이 아니다. '동네'의 위상만큼이나 '겸손'하게 가장 밑에 위치한 의료 기관이면서 기초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처치만 하는 곳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병원을 환자가 선택하는 한국의 시스템에서, 조금 걱정이 되는 질병이 있는 환자들은 동네 병원을 피해서 곧장 상급 병원으로 직행한다. 자기 몸에 대해 모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동네 병원 의사가 환자의 주치의 자격으로 종합병원 의사와 협의하며 최적의 치료 방안을 모색하는 경우가 흔하다. 동네 병원은 환자의 병력과 치료 기록 같은 의료적 배경을 이해하고 있고, 종합병원은 최신 의료 장비 및 치료 방법을 활용하여 복잡한 질환에 대처한다.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대학병원의 의료 파행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동네 병원의 입장이 궁금하다. 


표지사진 : 산청군 서당마을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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