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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ul 30. 2024

' 지금이 조선시대냐? ' : 누워서 침 뱉기

낡음의 굴레, 잊혀진 가치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요즘 누가 '여자는 모름지기 남편을 잘 만나야 한다.'처럼 편견에 찬 발언을 했다가는 '지금이 조선시대냐?'라는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성차별이나, 나이 많다고 젊은이에게 함부로 하는 등 봉건 질서에 동조하는 기색을 들키는 즉시 시대착오적 '조선 궁민'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고려도 신라도 아닌 조선이다. 


'지금이 조선시대냐?'라는 탄식은 단순히 시대를 비꼬는 표현을 넘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역사 인식을 반영한다.


조선시대는 일제강점기라는 박막薄膜으로 지금 시대와 절연絕緣된 채 우리 뇌리에 고리타분한 시대의 상징으로 박제되어 있다.


엄격한 신분 제도와 남녀 차별, 낙후된 과학 기술, 비효율적 행정 시스템, '그러다가 망국亡國...'이 우리가 기억하는 조선시대의 본질이다. 근대화에 성공하여 아시아를 호령했던 일본과 대비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객관적 사실이라는 측면이 있는 한편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비롯된 오류와 편견 또한 존재한다.


조선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약 500년간 존재했으며,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다. 이 시기에 적용된 관습이나 제도들은 그 시대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불평등한 신분제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으로 동서양의 많은 사회에서 신분제는 사회 구성의 기본 틀로서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의 과학 기술이 미미微微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자와 창제원리, 창제 시기를 알 수 있는 문자 훈민정음은 조선왕조의 창작물이다.


동의보감과 같은 전문 서적을 편찬해 의학 지식을 체계화했으며 천문학, 토지 측량 기술도 존재했다. 다만 기록이 부족하여 과학적 성과를 평가하기 어려울 뿐이다.


실록엔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인 정인지로부터 계몽산(啓蒙算)을 배웠다는 기사도 나온다. 계몽산은 당시 수학 책으로서 고차 연립방정식을 포함한 방정식론과 유한급수론이 포함되어 있었다. 토지 측량과 조세법을 바로잡기 위해 정확한 계산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세종 12년 10월 23일 경인 3번째 기사 / 계몽산을 배우다
임금이 계몽산(啓蒙算)을 배우는데, 부제학 정인지(鄭麟趾)가 들어와서 모시고 질문을 기다리고 있으니, 임금이 말하기를, "산수(算數)를 배우는 것이 임금에게는 필요가 없을 듯하나, 이것도 성인이 제정한 것이므로 나는 이것을 알고자 한다." 하였다. 
세종실록 50권 




우리가 산업화 과정에서 서양의 문물을 급속히 도입하다 보니 옛 것을 무차별적으로 낮춰보는 풍조가 생겼다. 전통 사상은 졸립고, 우리말은 촌스럽고, 노인은 혐오 대상이다. 


'조선시대냐?'라는 비아냥은 우리 사회가 현대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뒤떨어진 '현재'의 문제들을 싸잡아 조선시대라는 '과거'의 틀 속에 가두어 놓으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과 편견)을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구별에 기반한 대립적 사고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서양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간주되는 스스로의 속성을 동양에 투사함으로써 동양을 과거에 고착되어 합리성의 영역에 진입하지 못한 존재로 형상화했다'라고 주장한다. 


모든 문화의 발전과 유지에는 특정 대상을 이질적 존재로 분리하는 '타자화他者化'가 필수적이다. 


'오리엔탈리즘' '조선시대 비아냥' 모두 '열등한 타자'를 설정하여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동일한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서구가 동양을 비합리적인 존재로 설정하여 자신의 문명을 부각한 '오리엔탈리즘'처럼, 현대 한국 사회는 '조선시대'를 단순화하여 '미개한 과거'로 단정하고 '현대성'을 강조한다. 


사실 동양은 유럽의 실질적인 문명과 문화의 필수적 구성 부분이었다. 동양 없이 서양 없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유산은 좋든 싫든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이다.


'지금이 조선시대냐?'는 우리 과거에 대한 경멸을 함축하고 있다.


'지금이 조선시대냐?'는 누워서 침 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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