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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MD Nov 16. 2019

[월간책방]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

나는 소외감을 덜 느끼는 일을 하고 있다

아저씨 같은 책입니다.

아저씨들이 편안하게 읽을 만한 아저씨 같은 저자가 쓴 책입니다.


본인이 아저씨가 되어 가다 보니, 어느새 이런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브런치의 세 번째 책소개로 이 책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썩 나쁘지 않은 선택 같습니다. 이 책장이 패션업계 종사자 냄새가 나는 트렌디한 책을 소개하는 곳은 처음부터 아니었기 때문이죠.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사실 이 책은 현실 세계나 현재 이슈를 계속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트렌디한’ 책입니다.)


책의 저자는 김정운이라는 문화 심리학자입니다. 이름이 낯익으실 수도 있고, 아마 얼굴을 보면 아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얼마 전까지 TV에도 종종 나오셨던 분입니다. 요즘에는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에만 집중하시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이 분을 TV에서 봤을 때, 되게 아저씨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뭔가 매력적으로 재밌는 말씀을 하셔서 계속 듣게 되긴 한데, 뭔가 아저씨 같은 느낌은 피할 수가 없다. (저자에겐 죄송하지만, 좀 아저씨같이 생기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 분 책(제가 아저씨라고 여겼지만, 어느새 점점 닮아가는 저의 아버지가 대신 주문해달라고 했던)을 읽고, 이 번이 벌써 두 번째 책입니다. 아직 저 스스로를 중년이라 부르기에는 좀 이른 듯하지만, 중년 남성이 좋아할 만한 중년 남성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책입니다.


여수 작은 섬에 작업실을 마련한 저자(따라할 자신은 없지만, 잠깐 부러웠습니다. 여수라니요.)가 한 편 두 편 적어낸 이야기들로 구성된 책인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는, “남자에게도 자신 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노동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손으로 하는 일을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요. 저자는 프로이트의 ‘콤플렉스’와 더불어 현대인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이 마르크스의 ‘소외’라 말합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자신이 만든 생산물과는 아무 상관없이, 노동의 대가인 임금으로 살기 때문에, 노동의 결과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 이런 현대인의 삶을 마르크스는 ‘소외된 삶’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제가 하는 일의 특성 때문에, 남들보다 소외감을 좀 덜 느끼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 제가 직접 옷을 꿰매거나, 재봉틀을 돌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다른 직업보다는 노동의 결과를 꽤나 자주, 비교적 가까이에서 보면서 월급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너무 가까이에 있어, 사소한 것까지도 결정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일이 조금 피곤하고, 지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그 노동의 결과가 시시각각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제가 하는 일을 놓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올 해는 제가 하는 일을 놓고 싶어, 고민이 정말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9년 가까이해 온 이 일이 의미 없고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업종을 바꾸려고 시도해보기도 했습니다. (패션업을 떠나는 것이 꽤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장소(직장)을 옮겨보려는 시도도 해봤습니다. 이 일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이야기 드리지요.)


결국 이 업을 떠나지 않기로 한 건, 패션업이 가진 여러가지 매력과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노동의 결과가 시시각각 보여서, 소외감을 덜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제 기억에 남은 그 부분을 읽고 나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어디에 누구와 다니느냐(직장)’보다 ‘어떤 일을 하느냐(직업)’가 더 중요하다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애증의 직업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저에게 이 만한 일이 있나 싶습니다. 이 일을 하다보면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거든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찾고, 제가 어떻게 결정할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소외감을 느낄 새가 없습니다. 잠시 반복되는 일에서 오는 지루함과 익숙함에 도망치려 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음주 월요일부터 새롭게 재미를 찾아 나서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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