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익숙하지 않은 쪽으로] 10화

익숙하지 않은 낯선 길에서 배운, 단단하게 벽돌을 올리는 법

by 다니엘D

도윤은 업무 특성상 해외를 자주 나갔다. 공항 보안대를 통과하는 순간부터 그는 늘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익숙한 일상이 뒤로 물러나고, 낯선 공기와 표지판, 다른 언어가 그의 감각을 깨웠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머릿속 어딘가가 “딸깍” 하고 켜지는 느낌—집에선 잘 쓰지 않던 회로가 활성화되는 듯했다. 몰입과 집중이 쉽게 올라왔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뇌의 다른 영역이 열리는 감각을 좋아했다.


여행은 선입견을 벗기는 데도 도움이 됐다. 뉴스로만 접하던 도시를 직접 걷다 보면 “아, 내가 이 도시를 이미지로만 알고 있었구나”를 곧장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언젠가 여행 책을 쓰고 싶었고, 유튜브로도 기록을 남겨보고 싶었다. 다만 회사를 다니는 지금은 크게 벌이기보다, 현장에서 제대로 체험하고 충분한 만족을 얻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기록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유럽, 북미, 남미, 아시아까지—직장 생활을 하며 대략 마흔 개국을 돌았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그는 자신의 여러 자아를 만났다. 공항에서 가볍게 걷는 ‘여행자 도윤’, 공장 바닥과 회의실을 오가는 ‘회사인 도윤’, 식탁에서 가장의 책임을 느끼는 ‘가족의 도윤’. 서로 다른 장면에서 다른 표정을 갖지만, 결국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또 하나, 언젠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설계하려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명제를 조용히 마음속에 붙여두었다.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기초 체력은 분명 필요했다.


낯선 곳들은 언제나 균형 감각을 가르쳐 주었다.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같은 북유럽이나 스위스의 가격표는 상상을 초월했고, 반대로 동남아에선 놀라울 만큼 맛있는 길거리 음식을—특히 한국에서 좀처럼 신선하게 먹기 어려운 망고 같은 과일을—가볍게 즐길 수 있었다. 서유럽에선 소매치기를 당한 지인의 사연이 심심찮게 들렸고, 남미에선 숙소와 이동 경로를 고를 때 치안을 먼저 고려해야 했다. 해가 너무 짧아 오후부터 어스름이 내리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창 밖이 밤인지 낮인지 구분이 흐려질 정도로 해가 길게 머무는 곳도 있었다. 온도도, 음식도, 위생도, 교통과 인프라도 제각각이었다. 세계는 동일한 기준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각자의 조건으로 이루어진 지도라는 걸 몸으로 배웠다.




그런데 한국을 떠나 있을 때면 종종 이런 기사들이 타임라인에 걸렸다. “한국 아파트, 이제 매력 없다”, “외국에서 살고 싶지 않나?”—읽다 보면, 마치 어디든 한국보다 나은 듯한 문장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현장에서 알게 됐다. 어떤 나라는 땅이 넓어 수평으로 도시가 퍼지고, 어떤 나라는 산지와 해안, 역사적 보존 구역 같은 제약을 안고 있다. 각자 사정이 다르다. 한국은 땅이 좁다. 옆으로 못 펼치니, 좋은 것을 위로 올리는 전략을 택했다. 고밀도지만 정교한 인프라, 촘촘한 대중교통, 빠른 인터넷, 비교적 안정적인 치안과 위생. 좋다·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이 다른 환경에서 찾아낸 해법이었다. 그리고 그 해법은 생각보다 훌륭한 옵션이 될 수 있다는 걸, 세계를 돌아보며 체감했다.


도시는 결국 공간에 들어가는 싸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 나은 교육·일자리·문화·안전·시간을 얻고 싶다면,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런던, 뉴욕, 홍콩, 상하이, 도쿄—그 도시들이 비싼 데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원하니까, 값이 오른다. 반대로 사람들이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은 그만큼의 가격을 받기 어렵다. 미국의 주차장은 널찍했고, 유럽은 좁은 골목을 작은 차가 민첩하게 오갔다. 동남아의 도시들은 오토바이 물결이 시간을 절약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형식은 달라도, 각 도시가 자기 방식으로 욕망을 수용하는 그릇을 키워왔다는 사실만은 같았다.


이런 걸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초점은 “어디가 더 좋다”가 아니라 “나는 어떤 조건에서 살아야 나답게 산다”로 옮겨간다. 그는 다짐했다. 남들이 던진 문장이나 유행하는 인상비평에 휘둘리지 않고, 직접 보고 듣고 계산해서 결론을 내리자고. 낯선 곳이 주는 장점은, 익숙한 나를 낯설게 만들어 다시 보게 한다는 데 있다. 재테크든 부동산이든 커리어든—결국은 낯선 데서 얻은 인사이트를 가지고, 내 기반을 더 단단히 쌓는 일로 돌아와야 한다.




그는 ‘아기돼지 삼 형제’ 이야기를 자주 떠올렸다. 짚과 나무로는 바람을 막아내기 어렵다.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집만이 폭풍을 견딘다. 세상엔 예측 못 할 바람이 많고, 뉴스 헤드라인은 늘 요란하다. 그래서일수록 내 주위를 벽돌로 세워야 한다. 그의 벽돌은 무엇일까. 현금흐름과 비상금, 체력과 건강, 언어와 직무 기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매일의 루틴. 여행이 그의 감각을 넓혔다면, 이 벽돌들은 그가 서 있을 기반을 넓혔다.


물론, “밖은 천국이고, 한국은 지옥” 같은 단정은 현실을 놓친다. 한국의 집이 가진 장단, 외국의 주거가 가진 장단—둘 다 있다. 핵심은 비교가 아니라 적합이다. 내 삶의 목표·가족의 필요·일의 성격·내가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이 네 가지를 겹쳐 보면, 자연스레 수렴하는 해답이 있다. 그 해답이 때로는 서울의 한 동(棟) 일 수도 있고, 때로는 몇 년의 해외 파견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한동안의 임대와 현금 축적일 수도 있다. 정답은 대중의 가장 큰 목소리 속에 있지 않았다. 그는 해외에서 수없이 확인했다. 소란이 큰 곳엔 흔히 신호 대신 잡음이 맴돈다. 진짜 신호는 조용하고, 가까이 다가가야 들린다.


여행은 그에게 또 다른 습관을 남겼다. 도시에 도착하면 늘 세 가지만 먼저 살핀다—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교통), 무엇을 먹고 어떻게 소비하는지(인프라와 상권), 밤이 얼마나 안전한지(치안). 이 세 가지는 부동산 가격표 이전에 도시의 ‘체질’을 보여줬다. 체질이 건강한 도시는 시간이 갈수록 자생적으로 강해졌다. 체질이 약한 도시는 외형이 번드르르해도 작은 충격에 흔들렸다. 그는 이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마음속에 넣어두었고, 업무로 새로운 도시를 갈 때마다 조용히 확인했다. 낯선 곳에서 얻은 작은 체크가, 익숙한 곳에서의 큰 결정을 견고하게 만들어주곤 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는 한국식 해법의 장점을 더 또렷이 보게 됐다. 옆으로 펼치기 힘든 조건에서 위로 올리고 촘촘히 엮는 전략—도시 전체를 하나의 정교한 기계처럼 돌리는 방식. 야근하는 밤에도 지하철이 끊기기 전까지는 목적지에 무난히 도착할 수 있고, 도시의 다양한 층위가 대중교통 라인 위에 합리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선배 세대들이 꾸준히 쌓아 올린 결과였다. “내가 누리는 편의 뒤엔 누군가의 땀과 시간이 있다.” 해외를 다닐수록 그 사실을 더 자주,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쌓을 차례다—그는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낯선 곳은 늘 매혹적이다. 그러나 낯선 것만 좇다 보면, 돌아와 서 있을 자리를 잃기 쉽다. 반대로 익숙한 것만 붙들면, 변화의 파도를 외면하다가 뒤늦게 휩쓸릴 수 있다. 그래서 도윤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낯선 데서 배우고, 익숙한 데서 쌓는다. 여행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집은 나를 붙잡아 단단하게 만든다. 그는 오늘도 비행 일정을 확인하고, 다음 분기 현금흐름표를 정리하며, 벽돌 한 장을 더 얹는다. 멀리 가려면 가볍게 떠나되, 오래가려면 튼튼하게 선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꺼운 벽돌을 올리는 건 결국 내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사실이었다. 성실하게 뿌려놓은 씨앗들이 자라고, 그 위에 세월이 겹겹이 쌓이며 벽돌이 된다. 나는 그저 흙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햇빛이 드는 쪽으로 물을 주었을 뿐이다. 자라는 건 씨앗이고, 벽돌을 올리는 건 시간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도윤은 분양받았던 아파트의 사전점검에 참여하게 됐다. 건물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설렘이 이제 현실의 무게를 입고 다가왔다. 작은 흠집과 사소한 하자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는 그것마저도 소소한 이벤트처럼 받아들였다. 인생이 늘 완벽할 수 없듯, 새집도 그렇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이제 선택의 기로였다. 입주를 할 것인가, 전세를 줄 것인가. 전세가는 입주 초기라 그리 높지 않았다. 이미 본인의 생활 집이 있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따져보는 시선이 먼저였다. 하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대출을 받고 직접 입주하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 집이 단순한 숫자나 그래프의 일부가 아니라, 그가 지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결과물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마음을 정리했다. 세상은 언제나 요동치고, 뉴스는 소란스럽겠지만, 성실하게 뿌려둔 씨앗들이 언젠가는 자란다. 중요한 건 소란이 아니라 시간과 신뢰, 그리고 내가 택한 길을 끝까지 믿는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셨나요? 이 시리즈는 평범하지만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해온 10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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