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의 법칙, 대중이 멈춘 길 밖에서 답을 찾다.
아파트가 올라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철근이 세워지고 콘크리트가 타설 될 때마다 건물의 키는 조금씩 더 높아졌다.
도윤은 그 높이가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파트의 층수가 올라가는 만큼, 자산과 행복도 함께 성장하길 기대했다.
마치 계절이 바뀌고, 씨앗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듯이 자기 삶도 그렇게 단단하게 자라나길 바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건물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의 불안도 함께 자라났다.
뉴스에서는 집값이 떨어진다느니, 서울은 이미 포화라느니, 인구는 줄어들고 금리는 더 오를 거라느니 하는 말들이 매일같이 쏟아졌다.
분양을 함께 받은 단체 채팅방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갔다.
“요즘 분위기 안 좋아. 괜히 샀나?”
“네이버 카페에선 위치가 별로라고 하던데?”
“시기가 진짜 애매했어. 국제 정세도 그렇고…”
말들은 점점 더 불어났고, 근거 없는 소문들도 돌았다.
이런저런 분석이 난무했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괜히 샀나?’
그때 도윤의 머릿속에 스친 게 있었다.
입사 초기에 봤던 EBS ‘3의 법칙’ 프로그램이었다.
화면 속에서 세 명의 남자가 강남 거리에서 멈춰 서서 빌딩을 올려다봤다.
처음엔 아무도 관심 없던 풍경이었다.
그런데 몇 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췄다.
같이 빌딩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뭐지? 저기 뭐 있나?”
사람들은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멈춰서 있으니 같이 멈춰 선 거였다.
몇 분이 채 안 돼서 수십 명이, 그리고 곧 몇백 명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 시선을 올려두었던 세 명은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났다.
남아 있던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장면을 보면서 도윤은 알 수 있었다.
다수는 생각보다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걸.
이끌리는 대로 움직이고, 휩쓸리는 대로 멈춘다.
그리고 그 안에 있으면 어느새 자기 생각도, 자기 목소리도 잃어버린다.
그 프로그램이 말해준 세 가지 교훈이 있었다.
1. 대중은 다수 속에 속해 있기를 원한다.
2.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행동으로 옮기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3. 그리고 그 용기도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도윤은 그 교훈을 더 깊이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손석구 주연의 영화 **‘댓글부대’**를 보고 나서였다.
그 영화는 인터넷 여론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물론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조작된다고 말할 순 없지만,
‘우리가 보고 믿는 정보가 과연 사실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태도, 그것도 중요한 교훈이었다.
대학 시절 억새 축제도 그랬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과 함께 간 가을 축제였다.
억새밭에 불을 붙이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도윤은 그때 분명히 느꼈다.
불길이 곧 번질 거라는 걸.
바람이 불고, 갈대는 마른 장작처럼 바스락거렸다.
그런데 축제의 분위기는 묘하게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었다.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사람들은 그대로 믿었다.
하지만 도윤은 친구들에게 먼저 소리쳤다.
“우리 빨리 나가자. 늦기 전에.”
그들은 한 걸음 먼저 움직였고, 덕분에 다치지 않았다.
늦게 움직이던 몇몇 사람들은 그날 불길에 놀라 넘어지고, 연기에 휩싸여 고생을 했다.
취업 준비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점과 토익 점수에 목숨을 걸었다.
안전한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도윤은 달랐다.
그는 전공 공부를 즐거워했다.
하나를 깨닫고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기쁨이었다.
학교 성적은 전국 상위권에 들진 못했지만,
인적성 시험에서 전국 평균 0.6% 안에 든 적도 있었다.
“이거 아이큐 테스트 같네. 나랑 잘 맞는 것 같아.”
그는 문제를 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자소서와 면접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의 문이 열렸을 때 준비하려면 이미 늦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채용 공고가 나오기도 전에, 평소에 자기 경험을 정리하고 면접 스터디를 만들었다.
결과는 분명했다.
기본적인 스펙, 성실하게 쌓아온 대학생활,
그리고 채용 프로세스를 정확하게 겨냥한 준비가
그를 원하는 회사로 데려다주었다.
그래서 도윤은 알게 됐다.
다수가 안전해 보이는 길에 몰린다고 해서
그게 언제나 정답은 아니라는 걸.
대중이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은 때로는
이성보다는 분위기에, 데이터보다는 공포에 휩쓸릴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용기와 타이밍을 가진 사람만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뉴스에서는 집값이 떨어진다, 금리가 오를 거라 한다.
사람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불안해하고, 카페에서는 온갖 말들이 떠돌았다.
하지만 도윤은 달리 생각했다.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공급은 줄어들고, 수요는 늘어나고 있었다.
그 신호들은 오히려 그가 한 선택을 지지해 주고 있었다.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불안하긴 했다.
하지만 그는 뉴스를 끄고 가방을 꺼냈다.
다음날 해외 출장이 있었다.
오히려 일에 몰입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불안은 잠시 미뤄 두기로 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