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시험대에서 다음 차례를 대비하며 오답노트를 정리하다..
오답노트를 쓰는 밤
민도윤은 새벽의 정적 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무겁고 차가웠다. 모니터 화면에 켜진 수십 개의 차트는 불규칙하게 반짝이는 불빛처럼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달러 인덱스는 끝없이 솟구쳤고, 코스피는 바닥을 모르고 무너졌다. 부동산은 거래가 사라지고, 매달 시세가 떨어졌다. 마치 세상이 천천히 잠겨가는 것 같았다.
그는 펜을 들었다. 그냥 메모가 아니라, 오답노트였다.
실패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그 안에서 배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물에 또다시 빠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시장은 쓰나미처럼 왔다
시장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한다.
달러 인덱스가 조금씩 오르고, 금리가 천천히 오르고, 사람들의 표정이 변한다.
민도윤은 그걸 알았다.
아니,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시장은 어느 순간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자산 가격은 끝없이 솟구쳤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민도윤은 그걸 눈앞에서 보면서도 행동하지 못했다.
“아직 괜찮아. 곧 반등할 거야.”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시장은 그에게 맞춰주지 않았다.
끓는 물속의 개구리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마치 끓는 물속의 개구리 같다는 걸.
물이 천천히 데워질 땐 아무것도 모른다. 오히려 따뜻해서 괜찮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온도는 생명을 앗아갈 만큼 치솟아 있다.
민도윤에게 이번 하락장이 그랬다.
처음엔 괜찮았다. ‘조정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미 빠져나올 힘이 없었다.
그는 너무 늦게야 온도를 인지했다.
원칙이 없었던 게 아니다, 놓친 거다
민도윤에게는 늘 분명한 원칙이 있었다.
달러가 오르면 빠지고, 달러가 내리면 들어간다. 시장이 말하는 방향을 존중한다.
그 원칙 덕분에 2019년, 2020년, 2021년… 그는 이겼다. 위기 속에서도 버텼고, 남들이 공포에 휩싸일 때 차분히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원칙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칙을 지킬 힘이 없었다.
회사 일이 그를 붙잡았다.
보고서 마감, 야근, 새벽에 끝나는 회의… 피로에 절어 모니터를 켜도 머리가 돌지 않았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가 숨을 고르는 사이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달러라는 절대 기준의 재발견
오답노트를 쓰며 그는 차트를 겹쳐봤다.
달러 인덱스와 코스피, 부동산 가격, 금리 변동…
패턴은 너무 단순했다.
• 달러가 강세로 전환되면 국내 주식 시장은 추락했다.
• 달러가 약세로 꺾이면 부동산과 주식은 반등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이번엔 놓쳤다.
야근에 묶여 있던 사이, 시장은 이미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민도윤은 노트에 굵게 적었다.
• 달러가 오르면 국장은 탈출한다.
• 달러가 내리면 부동산·주식을 본다.
• 달러의 방향이 기준이고, 내 감정은 참고사항일 뿐이다.
이건 단순한 매매법이 아니라 앞으로의 생존 원칙이었다.
감정과 싸우는 인간의 얼굴
돈이 걸리면 누구나 인간이 된다. 두려워지고, 흔들리고, 변명한다.
민도윤도 그랬다.
“이건 잠깐의 조정일 거야.”
“언젠가 다시 오를 거야.”
그런 자기 위로는 매일매일 더 깊은 공포로 바뀌었다.
이번 실패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원칙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 현실적인 한계에 대한 답답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새벽 세 시의 다짐
펜을 내려놓은 건 새벽 세 시가 넘어서였다.
노트 첫 장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99% 맞아도 시장이 다르게 움직이면, 결국 시장이 맞다.
그리고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번 실패는 돈을 잃게 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걸 남겼다.
원칙을 실행할 체력, 시간, 마음가짐까지 준비되지 않으면 시장에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
민도윤은 결심했다.
다시 시장에 서더라도 이번엔 원칙을 최우선에 두겠다고.
회사 일이 아무리 바빠도 시장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는 아직 몰랐다.
이 다짐이 그의 다음 반년을 바꾸고, 더 큰 무대로 이끌게 될 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