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익숙하지 않은 쪽으로] 19화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다시 반복하는 역사를 따라가다.

by 다니엘D

2021년,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시절 모델하우스는 작은 축제 현장이었다. 견본주택 앞에는 밤새 줄을 서는 인파가 끝없이 이어졌고, 분양 사무소 앞에서 번호표를 받기 위해 텐트를 치고 기다리는 풍경이 전국 곳곳에서 펼쳐졌다. 당첨만 되면 수억 원이 오른다는 믿음이 사람들의 눈을 뒤덮었다.


매수자들은 단 한 장의 청약 당첨 안내 문자를 받기 위해 번호표 경쟁을 벌였고, 집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현금 계약금을 즉시 낼 수 있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중개사무소 앞에서 며칠씩 밥을 먹고 잠을 자며, 단 몇 분이라도 먼저 계약서를 쓰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 열기는 어느 순간 종교적 신념처럼 변해 있었다. 부동산을 잡지 못하면 인생이 끝난다. 이런 말이 아무렇지 않게 오가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 모든 장면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공포로 뒤바뀌었다.




영끌의 끝, 패닉의 시작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는 하늘을 찌르듯 치솟았다. 은행 창구에서 들려오는 대출 금리는 매달 새롭게 갱신되듯 올랐고, 매수자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갔다. 불과 몇 달 전까지 10억이 넘던 아파트가 8억, 7억으로 떨어져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영끌족들은 패닉에 빠졌다. 인터넷 카페에는 매일같이 절망의 글이 올라왔다. “전세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해서 보증금을 못 돌려주게 생겼다.” “대출이자는 월 200만 원이 넘는데 집값은 계속 떨어진다.” “어쩌면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한 걸지도 모른다.”


급매는 쏟아졌고, 급매보다 더 싼 급급매가 나왔다. 그럼에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의 눈빛에는 아직 더 떨어질 거야라는 공포가 가득했다. 누군가는 경매로, 누군가는 파산으로 내몰렸다. 언론에서는 매일같이 ‘영끌의 최후’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달린 기사들이 쏟아졌다.


도윤은 그 모든 장면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는 광풍이었고, 지금은 패닉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세상은 늘 이렇게 움직인다.




달러의 정점, 그리고 집값의 붕괴


같은 시기, 달러 환율은 1,400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의 긴장이 풀리면서 부동산 시장은 정반대 방향으로 출렁였다. 금리 인상은 부동산 시장에 직격탄을 날렸고, 매수 심리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도윤은 차트를 들여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달러가 정점을 찍고 내려온다. 이제 집값이 무너질 차례다.


공포는 언제나 기회를 숨기고 있었다. 결혼을 앞둔 그의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이제 전세라도 잡아야 해. 이게 최저점이 될 거야.”


하지만 여자친구는 망설였다. 가격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게 곧 기회라는 말은 쉽게 믿기 어려웠다. 공포가 사람 마음을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도윤은 확신이 있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하락장은 그에게도 익숙하지 않았겠지만, 이제 그는 안다. 가격이 급등한 후 급락하는 장면을 수없이 지켜봤고, 데이터와 역사 속 패턴이 그의 머릿속에 선명했기 때문이다. 도윤이 지목한 지역에 우선 여자친구가 전세 아파트를 계약했다. 고점 대비 약 2억이 떨어진 수준이었다.




아쉬움과 결심 사이에서


그러나 도윤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있었다. 바로 도윤의 서울 아파트였다. 고점에서 매도할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결혼 준비, 세금 문제, 타이밍에 대한 과도한 고민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물을 고스란히 현금화할 수 있었지만, 그 정도의 강심장을 가지기 위해서는 더 여유가 있고 예전처럼 혼자여야 했다. 왜 나이가 들수록 투자가 어렵다고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 결과, 유일하게 매도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한 그 결정은 앞으로 몇 년간 부담으로 남을 것이 눈에 그려졌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하지맘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제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쉽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그녀의 이름으로 당첨되다


그런 고민 속에서도 여자친구와 함께 분양 현장을 다니던 어느 날, 같은 브랜드에서 새 아파트가 분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당시 도윤이 지목한 지역은 입지가 서울과도 가깝고 교육에도 유리했다. 당시 아예 미달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그 혼돈의 시기에 여자친구를 설득하기는 어려웠고 조금 더 기다리기로 핬다.


약 반년이 조금 더 지나고 23년 하반기에 그때 놓친 아파트 뒤쪽에 같은 브랜드의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생애 최초 특별공급 자격도 가능했다. 단지수는 조금 부족했지만 거의 유사한 인프라를 가졌다. 이전에 미달이 났던 그 아파트는 저점 대비 5천만 원이 올라와 있었다.


도윤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이번엔 너 이름으로 도전해 보자. 이건 기회야.”


결과는 당첨이었다.


혼인 전, 여자친구의 이름으로 첫 신축 아파트를 잡았다. 그 순간, 2021년 고점에서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던 사람들, 그리고 2022년 패닉셀에 내몰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갔다. 폭풍 속에서 피어난 작은 새싹 같았다.




세금과 현실의 무게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냉정했다.

• 나는 이미 1 주택 보유 중 결혼 후 2 주택자

• 추가 취득 시 취득세 중과

• 2 주택 이상이면 종부세 대상

• 일시적 2 주택 비과세 요건 충족을 위한 기존 주택 매도 압박


모든 세금 조항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혔다.


게다가 이번에 당첨된 아파트는 25평에 8억 후반 대였다. 문득 2016년, 서울에서 34평 아파트를 6억에 분양받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불과 7년 만에 가격이 이렇게 오르다니, 세상은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 그리고 역사의 반복


그럼에도 도윤과 여자친구는 결정을 내렸다. 취득세, 대출이자, 세금 부담… 그 모든 것은 결국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였다. 그리고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절세도 가능했다.


여자친구 이름으로 된 첫 신축 아파트. 그 집이 오르기를, 그리고 우리가 함께 그 시간을 견디며 다음 계단을 밟게 되기를 바랐다. 또 여자친구에게 이런 재테크의 즐거움도 알려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과거에 공부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역사는 반복된다. 물레방아가 도는 것처럼 물이 차면 내려오고, 다시 퍼 올려 돌리기를 반복한다. 가격은 흔들리고 조정이 있지만, 물가는 장기적으로 점진적 우상향을 그려왔다. 백 년의 차트는 단 한 번도 이 법칙을 깨뜨린 적이 없었다.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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