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국인 교사의 조심스럽지만 용기 있는 시작
미국 메릴랜드의 초등학교에 교사로 합격한 후, 기쁜 마음도 잠시, 처리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집을 구하고, 차를 구입하고, 필라델피아에서 메릴랜드로 이사까지 해야 했다.
다행히 교장선생님께서 약 2~3주의 준비 기간을 배려해 주신 덕분에, 차근차근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정착할 수 있었다.
첫 출근 날, 학교 정문 앞에 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교정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7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전 과정을 포함한 규모 있는 초등학교였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학생들 중 90% 이상이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ESOL(영어를 제2언어로 배우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 선생님만 무려 7명이 있었고, 나도 그중 한 명으로 배정되었다.
이 학교는 ‘타이틀 원 스쿨(Title I School)’이기도 했다. 저소득층 학생이 많은 학교에 연방정부가 학업 지원을 제공하는 제도로, 이곳엔 맞벌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이민자 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넉넉하진 않지만 서로를 아끼고 응원하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공동체의 학교였다.
교직원들은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분들이었지만, 유치부의 몇몇 필리핀 출신 선생님들을 제외하면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자 외국인 교사였다. 게다가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중 원어민이 아닌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학교에 적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 영어는 한국에서 배운 것과 짧은 캐나다 어학연수, 그리고 2년간의 미국 대학원 경험이 전부였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내 한계를 인정했고, 그 빈자리를 성실함과 진실함, 헌신,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채우고자 했다.
발음이나 억양, 어휘의 다양성 등 부족한 부분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동료 교사들에게 틀린 부분이 있으면 꼭 고쳐달라고 부탁드렸다.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고 배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성장이 시작되는 지점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게 된 교육청은 미국 내에서도 규모가 큰 카운티였고, 교사 연수 프로그램이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제공되었다. 나는 그런 연수 프로그램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부족한 점을 하나하나 보완해 나갔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 이민자 아이들이었고, 수업은 대부분 아이들을 학급에서 데려와 소그룹으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만큼 담임 선생님들과의 소통도 무척 중요했다.
유치원과 1학년 담임 선생님들 대부분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었는데, 젊은 외국인 교사가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매일 애정 어린 조언과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선생님은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요. 괜찮아요. 처음엔 다 그런 거예요.” 그 따뜻한 말들이, 낯선 땅에서의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 주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아이들과의 수업도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엔 내 발음과 억양에 고개를 갸웃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아이들이 나를 받아들이는 속도는 어른들보다 훨씬 빨랐다.
선배 교사들은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분들 눈엔, 매일 고군분투하며 배우고 성장하는 내 모습이 또 하나의 ‘학생’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가르치고, 누군가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교사의 하루는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날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이 성장하는 날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의 새로운 교실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한 아이의 영어가 처음 말을 트듯, 내 인생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새로운 언어로 말문을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