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같은 기회를 지나, 감사로 시작된 하루들
미국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된 것은 내게 기적 같은 기회였다.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삶은 정말 달라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그때의 나는 세상이 온통 아름다워 보였고, 마음속엔 감사가 넘쳐흘렀다.
매일이 충만함으로 가득한 삶이었다. 물론 그 감정은 오래가긴 어렵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일상이 다시 나를 끌어내리려 했고, 현실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럼에도 나는 그 감사한 삶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 감정을 지속하고자 하는 열망이 누구보다 강했다.
우리 카운티는 여러 학교가 스쿨버스를 공유하는 시스템이라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학교들이 많았다.
우리 학교도 가장 빠르게 하루를 시작하는 학교 중 하나였다. 교사 출근은 오전 7시 15분, 학생 등교는 7시 30분.
외국인 교사로서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혼자의 힘으로는 이 생활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교회에서 새벽 예배를 드린 뒤, 곧장 학교로 출근하는 생활을 하기로... 이 생활은 1년 반에서 2년 가까이 이어졌다.
매일 아침, 나는 같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하고 감사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세요. 만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축복을 더해주세요.”
이 기도는 매일을 지탱해 준 나만의 힘이었다.
나는 외국인이었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교장 선생님과 동료 교사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매일 새벽을 깨워 아이들과 학교를 위해 기도했던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대부분은 남미에서 온 이민자 아이들이었고, 아프리카, 중국, 베트남 등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도 함께 있었다.
아이들이 나를 처음 만날 때 호기심과 초조함,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아마도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진심을 담아 웃으며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관계의 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서서히 마음을 열었고, 그 변화 속에서 나도 내가 여전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인 존재’ 임을 깨달았다. 그 동질감은 나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어느 날, 한 동료 교사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워요. 아이들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요.”
이런 작은 순간들이 쌓여가며 나는 깨달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진심은 전해진다는 것을.
다른 언어, 다른 문화라도 마음은 통한다는 것을. 새벽 4시 하루의 시작, 오전 7시의 출근, 아이들과 함께 보낸 하루하루가 결국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간들을 돌아보니, 기적이란 특별한 하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선택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는 마음들이 하루하루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새벽 4시에 알람이 울릴 때마다 이불을 걷어차며 일어났던 그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질 때마다 느꼈던 그 뿌듯함이, 내가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이유가 되었다.
요즘도 가끔 힘든 아침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문득 그때의 새벽을 떠올린다. 어둠 속에서도 불을 켜고 하루를 시작했던 그 시간들을. 그러면 오늘도 다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