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선생님, 이민자 아이들의 마음을 읽다

말은 몰라도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by Hannah

학교에 가는 것도 낯설고 긴장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물 한 잔 마시고 싶어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끙끙거리다 결국 눈물만 뚝뚝 흘리는 아이. 이민 온 아이들에게 언어는 ‘배움의 도구’가 아니었다. 그건 그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었다.


내가 맡았던 아이들 대부분은 처음으로 ‘학교’라는 공간에 발을 디딘 아이들이었다.

학기 초, 영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ESOL 교사였던 나는 그 아이들을 직접 반에서 데려와 소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영어 레벨이 아주 낮은 아이들에게는 시끄럽고 북적이는 교실에서 잠깐 도와주는 것보다, 조용한 공간에서 각자의 수준에 맞춰 집중 수업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기다림의 교실, 회복의 시간

아이들은 내 수업을 기다렸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교실에서 벗어나, 자신을 이해해 주는 선생님과 눈을 맞추는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 쉼이자 회복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정말 빠르게 알아챘다. 자신의 부족함을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는 어른이 있다는 걸.

어느 날부터인가,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들까지 내 수업에 따라오고 싶어 했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서 줄을 세우면 미국 원어민 아이들까지 자연스럽게 그 줄에 끼어 서 있던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땡땡이를 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수업에 가는 친구들의 들뜬 얼굴과 돌아올 때의 아쉬운 표정을 보며 '저 선생님 교실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걸까?'하고 궁금해졌던 걸까.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네 감정을 표현해 봐.

수업이 시작되면,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고 “오늘 하루 어땠어?”, “지금 기분은 어때?” 감정을 표현하는 말부터 꺼냈다.

교실에서 자주 쓰는 표현들, 실제로 써볼 수 있는 말들로 수업을 채웠다. 시청각 자료는 필수였고, 반복해서 말해보고, 롤플레이를 하며 아이들이 재미와 집중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수업이 끝나면 항상 물었다.
“오늘 수업 어땠어?”
“기억에 남는 건 뭐였어?”
“어려웠던 건?”

아이들의 대답은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피드백이 되어주었다.

한국에서 유치원 교사와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며 몸으로 익혔던 모든 것들이 이 작은 교실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아이들의 홀로서기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던 아이가 3개월, 6개월, 그리고 1년이 지나며 반에서 자신 있게 손을 들고 발표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혼자 조용히 미소 짓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이제 너는 괜찮아.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 선생님은 너를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해.”
그 말을 전하며 아이를 ESOL 기초반에서 졸업시키는 순간이 온다. 어느새 또 한 아이가 자기 교실에서 혼자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다.

교사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자, 아쉬움과 자부심이 뒤섞여 밀려오는 시간이었다.

교사는 아이들이 홀로서기할 수 있도록 조용히 밀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마다 다시 되새긴다.


초코파이 하나에 담긴 사랑

가끔은 한국식품점에서 파는 초코파이나 한국에 다녀올 때 사온 스티커, 문구류 같은 작은 선물들을 아이들과 나누곤 했다. 아이들은 “Thank you! Thank you! I love you!”를 외치며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얼굴로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한국에서는 너무도 흔한 것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설렘이고 기쁨이었다.

그때의 웃음은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만든다.


내 마음속 반짝이는 얼굴들

사랑반 아이들, 어학원 아이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까지.

각자의 모습대로 무한한 사랑을 주고, 내 손을 잡고 따라와 준 아이들.

그 반짝이던 눈빛과 얼굴들은 지금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하나둘,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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