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들과 언어 너머로 연결되다
사춘기 아이들은 참 묘하다.
한순간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마음의 문을 꼭 닫아버린다.
그들의 마음을 열고, 언어와 문화를 넘어 연결되는 일.
나는 그 치열하고도 따뜻한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처음 2년 동안 나는 유치원에서 1학년까지의 ESOL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직 서툰 발음으로 ‘apple’을 따라 부르던 아이들, 알록달록한 색종이를 오리고 풀칠하던 작은 손들.
그들과 함께한 교실은 동화 속처럼 따뜻하고 아늑했다.
그런데 3년 차를 앞두고, 교장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올해는 5학년과 6학년을 맡아보는 게 어때요? 선생님이라면 잘할 겁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학원에서 큰 아이들을 가르쳐 본 적은 있지만, 사춘기를 겪는 최고 학년이라니. 발음 하나 틀렸다고 킥킥거리는 아이들, 빠른 농담을 못 알아듣고 멍하니 서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유치원과 저학년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던 ‘안전지대’를 떠나, 나는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나는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을 뒤로하고, 위층 교실로 짐을 옮겼다. 새로운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하게 될 거라는 걸 직감했다.
5·6학년 교사들은 스타일부터 달랐다. 어린 연령을 맡는 교사들과 달리, 표정은 무겁고 태도는 사무적이었다.
아이들 교실 바깥으로 들려오는 큰 목소리는, 같은 교사인 나조차 움찔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담임 선생님들과 함께 큰 아이들을 가르치며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엄하고 단호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아이들을 쥐락펴락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통하는 유머, 교실 안팎에서 쌓아가는 래포. 그리고 무엇보다, 겉보기와 달리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보고 사랑하는 열정이 있었다.
그들의 하루는 종종 전쟁터 같았다. 빡빡한 시험 일정, 여러 현장학습과 행사 준비, 아이들의 학업 성취를 끌어올리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이 가운데 쉽지 않은 아이들과 매일 부대끼며 씨름해야 하는 시간. 아이들은 몸은 커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는 사춘기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말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고, 또 다른 한마디에 마음의 문이 닫히는 시기.
그래서 고학년 교사들에게는 특별한 힘이 필요했다. 수업의 시작과 끝을 조율하는 단호함과 부드러움,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유머 감각, 차가운 성취도 뒤에 숨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내는 눈, 포기하지 않고 옆자리에 앉아주는 끈기, 그리고 교실 밖에서도 이어지는 책임감.
이 모든 것이 모여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변화를 이끌어냈다.
특히 초등 고학년 ESOL 아이들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더 쉽게 느꼈다. 언어 장벽 때문에 마음을 여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공이 필요했다. 때로는 영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니면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의 부족함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 얼어붙은 마음을 읽어내고 천천히 녹여주는 것이 ESOL 선생님의 몫이었다. 작은 성취에도 크게 기뻐하고, 잘못된 문장을 고쳐주기보다 먼저 마음을 다독였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언어는 배움으로 시작되지만, 마음은 연결로 열린다는 것을."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과정을 밟지 못한 한국인 교사로 고학년을 가르친다는 건, 더욱 많은 준비와 노력을 요구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것에 더해, 미국의 역사·문화·과목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습득하는 것이 필수였다. 늦은 밤과 주말을 쪼개 수업 자료를 만들고, 스크립트를 써서 달달 외워 수업에 들어가던 날들이 이어졌다.
2년간 5학년·6학년 ESOL 교사로 일하며, 나는 많은 성취감을 느꼈다. 성적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부딪히고 노력해 거둔 성과는 특별했다.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MAP(Measure of Academic Progress, 학업 성장도 측정 시험), 읽기 테스트, 각종 벤치마크를 통해 학업 성취를 측정한다. MAP은 온라인 적응형 시험으로, 학생의 수준에 맞춰 문제 난이도가 실시간으로 조정된다. 단순한 ‘점수’보다, 학기와 학년을 거치며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데이터는 곧 교사의 성적표이기도 했다. 그래프의 곡선이 오르면 아이들의 성장이고, 멈추면 교사의 역량에 빨간불이 켜진다.
그런 환경 속에서,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이 지켜보는 MAP 데이터 미팅중 우리 아이들이 보여준 놀라운 성과는 잊을 수 없다. 교장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 아이들의 결과를 칭찬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숫자들 뒤에 있는 진짜 이야기들을 생각했다.
소피아가 처음으로 손을 들어 발표하던 순간,
호세가 자신의 글을 친구들 앞에서 당당히 읽어주던 날,
마리아가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쉬는 시간.
점수는 결과였지만, 진짜 성취는 그 과정 속에 있었다.
아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서로를 지지하는 공동체가 된 것, 그리고 자신들의 이중 언어 능력을 약점이 아닌 장점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그 성취는 매일의 수업, 아이들의 작은 변화, 서로를 믿고 쌓아 올린 시간들이 만든 결과였다.
그렇게 4년간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모든 것을 뒤흔드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왔다.
안정되었다고 믿었던 삶은, 또다시 거센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원치 않는 ‘리셋’ 버튼을 눌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