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사, 중학생이 된 제자들을 만나다

사랑반, 9년 만의 재회

by Hannah

휴대폰 속 한 줄의 메시지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선생님, 한 번 만나실래요?”

미국에 있을 때도 종종 안부를 나누던 사랑반 어머님이, 내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연락을 주셨다.
“아이들이 다 중학교 3학년이 됐어요.”

9년 전 36명의 아이들과 보낸 1년.

그건 내 인생 첫 교사 생활이자, ‘사랑반 담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
고작 1년이었는데, 나를 기억해 주고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니…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9년 전 그날로 돌아가다

약속 당일,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키는 훌쩍 자라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목소리도 한참 낮아졌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던 그때의 눈빛만큼은 그대로였다.

“선생님!”
이름을 부르자 금세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에, 어색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이야기가 시작됐다.


한창 바쁠 나이인데도 10명이 훌쩍 넘는 아이들이 모였다. 모처럼의 만남을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식사를 하며 9년 전의 기억들이 하나씩 꺼내졌다.

유치원 운동회 줄다리기 때, 아이들보다 더 크게 소리치며 응원하던 초임 교사.

내 서툰 피아노 반주로 참여했던 동요대회, 그런데 그 반주로 상까지 받았던 날의 환한 웃음.

“순수하고 진심 어린 선생님 눈빛 덕분에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었어요.”라는 학부모님의 고백. 그때는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와 마음들이 하나둘 쏟아졌고, 우리는 어느새 유치원 교실로 돌아가 있었다.


놀이터에서 만난 그날의 우리

아이들과 식사를 마친 뒤 찾은 노래방. 아이돌 노래와 최신곡이 이어지던 가운데, “선생님도 한 곡 불러주세요!” 하는 성화에 결국 마이크를 잡았다.
느린 전주가 흐르고 아이들이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양손을 위로 흔들고, “선생님, 최고!”를 외쳤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고, 그 순간 유치원 복도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웃음이 아련하게 겹쳐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유치원. 원장님이 되신 옛 원감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작은 놀이터, 미끄럼틀, 나무 그네가 예전 그대로였다.

“선생님, 여기서 제가 넘어져서 울었잖아요.”
“맞아요, 모래놀이 하면서 동물원 만들었었죠.”

아이들과 주고받은 짧은 대화가 공기를 더 따뜻하게 물들였다.
놀이터 모래 위로는 햇살이 부드럽게 번지고, 바람결에 울린 그네 체인의 달그락 거림이 그날의 웃음을 오래도록 머금고 있었다. 그 시절의 사랑반이, 눈앞에 그대로 되살아났다.


마음에 남은 선물

짧았던 1년이지만, 아이들은 내 마음속에 평생 남았다. 그리고 오늘,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내가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교사라는 일은 지식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마음에 ‘잊히지 않을 장면’을 남기는 일이었다.


지금은 다른 자리에서 리더십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가끔 사랑반 아이들과 같은 해에 태어난 신입 교사들을 만날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싱그럽게 자랐을까?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일까?


오늘의 재회는 내 마음에 오래 남을 선물이 되었다.
사랑반 아이들아, 우리가 나눈 웃음이 오래도록 너희 걸음에 묻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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