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깨지다
교장직 제안을 받아 든 날, 내 마음은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달렸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나는 아직 스스로 확신이 없었다.
그즈음, 싱가포르 본부에서 호주 출신의 한 교장 선생님이 파견되었다. 아시아 각국 캠퍼스를 순회하며 교사들을 위한 워크숍과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분이었다. 그분과 함께한 이틀은 내 마음을 오래 울리는 시간이 되었다.
첫날, 교장 선생님은 우리를 그룹별로 앉히고 종이와 펜을 건넸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보세요. 그리고 그 아이를 나타내는 단어들을 적어주세요.”
어떤 그룹은 아이 머리에 스펀지를 그려 넣어, 세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또 다른 그룹은 부정적인 단어로 가득 채운 아이의 모습을 그렸다. 놀랍게도 나 역시 무의식 중에 ‘통제가 필요한’, ‘집중력이 부족한’ 같은 단어들을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이렇게 완성된 그림들은 Image of the Child라는 활동이었다.
“선생님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아이의 이미지가, 결국 교육 속에 고스란히 투영됩니다.”
짧지만 깊은 메시지가 가슴속에 내려앉았다. 나는 정말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었을까?
워크숍이 끝난 뒤, 나는 용기를 내 속마음을 꺼냈다.
“교장직 제안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고민 중이에요.”
그분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첫째, 나이나 경력, 능력을 따지기 전에 좋은 교사는 이미 좋은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맞는 교육을 전하려는 마음—그게 리더십의 본질이죠.
리더는 교사 개개인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둘째, 한 반의 교사는 1년에 20여 명의 아이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올바른 리더는 교사들을 이끌어 각 반의 아이들에게, 나아가 학교 전체의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죠.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요?”
그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에 파문처럼 번졌다.
결국 나는 교장직 제안을 수락했다. 이어진 4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국제학교라는 무대에서 학부모들의 기대는 크고 목표는 높았다. 때로는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한 번은 학부모님이 “우리 아이가 왜 반 아이가 바깥에서 연 생일파티에 초청받지 못했냐” 며 학교에서 왕따를 묵인한 것 아니냐고 강하게 항의하셨다.
바깥에서 열리는 생일잔치조차도 리더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억울함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그 순간 깨달았다. 리더란 때론 이해받지 못해도 묵묵히 서 있어야 하는 자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하루하루 변하는 아이들, 함께 힘을 내주는 선생님들, 그리고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이 나를 붙들어 주었다.
그 시간 동안 학교는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다. 학생 수가 두 배 이상으로 늘었고, 새로운 캠퍼스를 오픈했으며, 초등학교를 설립하고 중·고등학교 확장의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숫자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이들, 교사들, 그리고 학교 전체를 향한 나의 마음이 이전보다 더 넓고 깊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첫 해에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다 번아웃을 겪기도 했다. 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나약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실패를 통해 나는 진정한 리더십은 혼자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서는 것임을 배웠다.
그 네 해 동안 나는 리더십이 자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다.
책상 뒤보다 교무실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고민하는 시간 속에서 진짜 힘이 자란다는 것도 알았다.
결정의 순간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랐고, 그 책임을 지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변화가 공동체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이 깨달음들은 앞으로도 내 걸음을 비출 것이다.
언젠가 나처럼 갈림길 앞에 선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싱가포르 교장 선생님이 내게 건넸던 그 한마디처럼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