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다
2019년 말, 전 세계는 예상치 못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2020년, 코로나19라는 이름은 순식간에 전 세계를 멈춰 세웠고, 사람들의 삶은 두 시대로 나뉘었다. 코로나 전(BC, Before Corona)과 코로나 후(AC, After Corona).
푸자이라의 새로운 학교로 옮긴 지 불과 몇 달 만에, 나는 상상도 못 했던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2020년 3월 어느 날 아침, 긴급 화상회의가 소집되었다.
“내일부터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합니다.”
학교장의 말이 끝나자 교무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코로나 이전, ‘미래에 사라질 직업 리스트’ 속에는 교사가 있었다. 인공지능이 더 효율적으로 학습을 시키고, 온라인 콘텐츠가 무궁무진하게 쏟아지니 언젠가 교실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그 ‘미래’를 갑작스럽게 앞당겨 놓은 셈이었다.
선생님들을 온라인 수업에 익숙하게 교육하고, 코로나에 걸린 학생이나 교직원에 어떻게 대처할지, 위기 속에서 교직원과 아이들의 웰빙을 어떻게 지킬지… 모두 리더의 몫이었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금세 깨달았다.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온라인 수업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기술에 능숙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는 기대는 현실 앞에서 무너졌다.
첫 온라인 수업 날, 8시 정각에 접속한 학생은 25명 중 12명뿐. 10분이 지나서야 18명, 20분 후에는 22명이 되었다.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하나둘 카메라가 꺼졌다.
“여러분, 카메라 좀 켜주세요.”
그러자 채팅창에는 “인터넷이 느려요”, “집이 시끄러워요”, “부끄러워요”라는 답변만 올라왔다.
내가 직접 목격한 장면 중 하나는 수학 수업이었다. 교사가 분수 개념을 설명하며 질문을 던졌지만, 평소라면 적극적으로 대답하던 아이가 화면만 바라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몇 번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교실이라면 교사는 아이의 표정과 눈빛, 작은 몸짓만으로도 이해도를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니터 속 작은 화면으로는 아이의 진짜 상태를 읽어내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그 장면은 온라인 수업의 본질적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3개월이 지나자 변화는 분명해졌다. 학습 성취도 조사 결과, 중간층 학생들이 사라지고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극명하게 갈라졌다. 더 큰 문제는 정서적 어려움이었다.
어린 학생들 중에는 말하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늘었고, 학부모들은 “아이가 친구를 그리워한다”, “집중을 못한다”라며 호소했다. 특히 만 3세에서 5세 아이들 사이에서 언어 발달 지연이 뚜렷했다. 장애 아동 교육은 더욱 사각지대에 놓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유치원에 다니던 다운증후군 만4세 아이의 아버지가 답답함을 토로하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라고 묻던 그 간절한 눈빛을.
그때 교사들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교사의 본질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를 붙잡고 관계를 이어가며 마음을 살피는 것이라는 것을.
UAE의 코로나 대응은 한국과 달랐다. 매주 PCR 검사가 의무였고, 백신 없이는 학교 출입이 불가능했다. 오후 8시 이후 외출은 금지되었고, 쇼핑몰 입구에서 체온을 재는 것은 일상이었다.
학교 리더로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학생이나 교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였다. 학부모들의 불안, 교육부의 지침, 아이들의 안전 사이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느낀 것은 이것이었다. 위기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첨단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소통이라는 것.
3년여의 팬데믹이 끝나고, 세상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 시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분명하다.
AI는 교사가 활용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교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교육의 본질은 정보가 아니라 관계이고, 학습의 핵심은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AI가 수업을 설계할 수는 있어도, 아이의 눈빛을 읽을 수는 없다.
지식은 기계가 전할 수 있어도, 마음을 붙잡아 주는 일은 오직 교사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교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곳은 언제나, 아이와 교사가 서로를 발견하는 작은 우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