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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pr 02. 2022

나의 캐나다 영어 선생님들, 그리고 마녀 메리

이곳 전설에 따르면 팬쇼 칼리지 부설 어학원에는 3명의 마녀가 산다. 한 달 전 어학과정 레벨이 한 단계 올라가면서 교수진이 바뀌었는데 그중 가장 핵심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가 그 마녀의 수장이라고 한다. 그녀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내가 그 교수의 학생이 되었다고 하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남편이 이미 그 교수에게 수업을 들은 터라 소문이 아니더라도 그 교수가 얼마나 깐깐하고 정확한지, 학생들을 얼마나 몰아치고 가혹하게 트레이닝을 시키는지 이미 알고는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메리(Mary).


내가 이번에 메리의 학생이 되었다고 하니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남편이 나는 메리를 좋아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전 레벨에서 총 3명의 교수에게 영어를 배웠던 나는 다소 깐깐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게 가르치고 성실한 교수가 가장 좋았다.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이 영어의 향상이기 때문에 학생인 나에게 가장 훌륭한 선생은 나를 향상시켜주는 사람이다.


법률 상식이나 경찰제도 등 상식 위주로 다소 여유로운 수업을 담당하던 아랍인 남자 선생 G가 있었는데 수업 준비도 하지 않고 임기응변식으로 대충대충 수업을 하니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불성실함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게다가 남녀차별도 어찌나 심하던지! 어학원 학장에게 그 선생의 불성실함과 차별의식을 강력하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다행히 수업이 끝난 후 교수들을 평가하는 기회가 있었기에 솔직하게 평가를 했다. 그런데 불만은 나만 있었던 건 아닌가 보다. 이번 학기에 그 교수가 더 이상 팬쇼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스피킹과 리스닝을 가르치던 교수 B는 얼굴도 참 예쁘고 발음도 예쁜 30대 중반의 백인 여성이었는데 학생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영어를 잘 알아듣도록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해주는 마음 씀씀이가 참 좋았다. 그녀 수업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확실히 긴장도 덜 하고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수업 강도는 다소 느슨해서 그녀의 수업으로 내 스피킹과 리스닝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은 아니다.


내가 포함되어 있던 레벨의 대장격인 40대 백인 여성 H 교수는 수업을 다소 엄격하게 진행했지만 누구보다 수업을 성실하게 준비했고, 레벨의 수준에 딱 맞는 교수법 덕분에 내 영어 실력이 꽤 늘었다. 피드백도 꼼꼼하게 해 주었고, 학생들이 너무 힘들지 않도록 적절한 수준으로 진도를 나가고 과제도 내주었다. 비록 H교수는 다정다감하거나 재밌는 교수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을 다소 엄격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참으로 공정하지 못한 처사이다. 그리고 그녀의 별명은 몇 주 후 이렇게 붙여진다. 메리의 여동생! ㅎㅎㅎ


이 시절은 그래도 수업이나 과제를 잘 따라가면서 브런치에서 글도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발행하는 여유를 부렸는데 레벨업이 되고 난 후 지금은 거의 과제에 치여 살다 보니 글을 쓸 여력이 없다. 최근에 발행한 글들은 거의 한 두 달 전부터 구상하고 틈틈이 스케치를 해 둔 거라 발행이 가능했고, 창작력이 필요한 시와 소설은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게 다 원흉은 바로 마녀들의 수장 메리! 메리 때문이다. 하하하하


영국의 유명 배우 빌 나이(이 배우 되게 웃기고 재밌음)

메리는 50대에서 60대로 보이는 백인 여성인데 생김새는 바로 영국 배우 빌 나이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살짝 인디언의 피가 섞인 듯한 그녀는 캐나다 최고의 명문 대학인 토론토대학을 졸업했고,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캐네디언답게 집에 큰 개들을 꽤 많이 키우고 있다.


나긋나긋하고 우아한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엘레강스한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다. 내가 본 중 최고의 카리스마를 가진 메리는 수업 시간 온화한 목소리로 2시간 20분간 쉬지도 않고 강도 높은 강의를 이어 나간다. 숙제량도 무시무시한데, 학생들이 숙제가 많다고 하소연하면 엄청 좋아하면서 "You can do it"이라고 한다. 또 한 번은 50대 학생이 과제하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너무 힘들다고 메리에게 하소연했더니 "You need to make a balance in your daily life"라고 해서 모두의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ㅎㅎㅎㅎ


메리 수업의 주된 목적은 Academic Essay Writing이다. 거의 매일 쓰기 숙제를 내주고 있고, 최종 과제로 내는 에세이를 거의 6주간에 걸쳐서 숙제로 진행하고 있는데 에세이 주제문을 오케이 받는데 거의 서로 10통 이상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나뿐 아니라 학생들 모두 메리를 한 번이 아닌 여러 번에 걸쳐서도 잘 통과하지 못해 벌벌 떨면서 과제를 하고 있다. 피드백을 보면 '불명확하다', '네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정확하지 않다', '이 예시는 네 주제와 연관이 별로 없다' 등등 꼼꼼하기 그지없다. 나는 그래도 나름대로 브런치 작가가 아닌가. 그래서 정말 이를 악물고 시험과 숙제를 하고 있어서 생각보다는 좋은 점수는 얻고 있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 내가 요새 브런치에서 글을 잘 못쓰는 이유는 순전히 메리의 에세이 숙제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메리 선생님을 좋아한다. 최근에 스피킹 교수 K가 거의 2주간 잠적하고 수업에 나타나지 않아 다른 선생님이 수업을 대신 맡아한 적이 있다. 결국 K는 이번에 강의를 중도 하차하고 다른 선생으로 바뀌었다. 내 담당 선생님은 아니지만 남편의 어떤 선생은 이런저런 핑계로 수업을 잘 빠진다. 또 어떤 선생은 수업 시간에 맥주를 마시면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 물론 맥주를 마시더라도 수업을 잘했기 때문에 나는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문화 충격은 다소 있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책임한 일들을 캐네디언 선생님들이 하는 걸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 얼마나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달까.


그런 저런 다양한 선생들 사이에서 언제나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 엄청 강도 높게 수업을 진행하는 메리에게 존경심이 생긴다. 몇 년 전에 칼리지로 입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레벨에서 학생들 전체를 통과를 안 시켜 주었다는 전설의 인물이긴 하지만 그녀의 엄격함은 언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프로페셔널한 정신 때문임을 나는 잘 이해한다. 비록 한 번씩 수업시간에 학생이 조금 헛소리를 하면 "지금 네가 말하는 시간 아니야. 좀 기다릴래"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면 모두들 무서워서 침만 꿀꺽 삼킬 때도 있지만... 학생들의 소중한 수업 시간을 조금이라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모두들 알고 있는 듯하다.


실은 오늘이 캐나다의 만우절(April fool's Day)인데, 수업시간에 18살 막내 학생이 만우절이니 오늘 내준 숙제는 전부 농담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자 메리가 그냥 웃으면서 지나갔는데 수업이 끝나기 직전에 만우절 선물로 숙제 하나를 빼주었다. 흰머리에 주름도 자글자글하지만, 순수함이 엿보이는 눈을 가진 메리,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면 한국 김치를 좋아한다는 메리를 위해서 김밥을 말고 김치를 담아 선물하려고 한다. 손편지도 줄 테다. 아마 시작은 이렇게 될 것 같다.


"메리, 당신의 별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학생들에게 강력한 마법을 부리는 당신의 별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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