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손을 놓지 않을게

엄마의 자리를 마땅히 지키는 것

by 글꿈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나는 감격스러운 이면에는 아픔과 상처, 눈물도 있겠지. 어느 순간에는 나를 왜 세상에 태어나게 했느냐며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느 순간에는 눈앞에 뻔히 보이는 외나무다리를 홀로 건너려 할 수도 있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엄마가 된다는 건 그런 이면까지도 품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이 진정 ‘너’라는 존재를 사랑하는 길이겠지. 이거 하나는 약속해. 어떠한 일에도 너의 손은 놓지 않을게. 참 당연한 일인 것 같아도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도 몰라.


엄마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물론 너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고 네가 어른이 되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조심스레 고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김슬기《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된 한 여자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더라. 언젠가는 나도 겪어야 할 일이고, 내 주변 누군가는 겪고 있는 일이니까 말이야.


SNS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다 보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와 함께 찍은 모습을 자주 볼 수가 있어. 나는 그런 사진들을 구경하면서 예쁘고,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하지. 종종 그런 모습들이 부럽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아이와 옷을 맞추어 입고 싶고 이곳저곳 놀러 다니고 싶다고 생각한단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모습들이 있을 거야.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본 사람이라 잘 알지! 아이들은 예측할 수 없고, 호기심이 넘치는 존재들이라는 걸. 어른들처럼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지. 아이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어디에든 표출해야만 해. 깔끔한 걸 좋아하고, 조용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이 벌려놓는 갖가지 상황들을 견디기 힘들어할 것이 분명해. 그래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성향에 따라서도 육아스트레스 정도가 다를 거야.


엄마가 되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겠지. 나는 과연 좋은 엄마인 걸까, 좋은 엄마란 무엇일까. 위에서 엄마가 읽었다는 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육아지침은 세상에 차고 넘쳐. 그런데 그런 것들이 오히려 박탈감만 더 키운다는 거야.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애를 쓰다 보면 자존감이 더 낮아진다는 거지. 어떻게 ‘좋은 엄마’를 특정한 기준으로 놓고 모든 사람들이 그 기준에 맞출 수 있겠어?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야. 엄마도 학교에 다니면서 ‘올바른 부모의 양육태도’에 대해서 공부했고, 아이들이 타고나는 몇 가지의 기질에 대해서도 공부했어.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단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과 그 부모들을 어떠한
기준과 틀로 정의 내릴 수는 없다는 걸.


적어도 부모라면, 그들이 세상에 나게 한 작은 생명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고민하면 그만인 것이야.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야. 아이답게 여러 번 실수하고, 다시 일어나면서 차근차근 세상을 배워나가면 그만인 것이야. ‘좋은 부모’가 뭐야? ‘아이다운 것’이 뭐야? 누가 이러한 것들을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적어도 너의 손을 놓지 않기로 다짐했어. 세상이 어여쁜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때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너 스스로 한 발, 한 발 세상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하겠지. 네가 나의 품 안에 있을 때에도, 그렇지 않을 때에도 엄마는 적어도 너의 손을 놓지 않고 곁에 있을게. 몸이 멀어져도 마음만은 너의 곁을 지키고 있을게. 그것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몫이 아닐까 생각했어.


엄마가 운전면허학원을 다닐 때 들은 충격적인 말이 있단다. 한 학생이 아직 면허시험에 응시하기에는 너무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한 학원에서는 연습 시간을 조금 더 늘리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대. 그랬더니 그 학생의 부모가 항의전화를 했다는 것이지. 자기 아이가 무엇이 부족해서 그러느냐, 시험을 치르게 해달라고 말이야. 여기서 내가 놀란 포인트는 아이의 부모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야. 20살이 된 아이인데도 부모가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한다니. 20살이 된 아이라면 자신이 면허시험을 치러도 될 정도인지, 아닌지 정도는 스스로 가름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닐까? 부모가 나서야만 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한 법정드라마에서는 회사에서 상사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해 언어를 상실한 남자 이야기가 그려졌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의 어머니는 회사에 수시로 전화를 해서 “우리 애 좀 잘 봐주세요.”, “아직 많이 부족해서 그러니 이해해 주세요.”하고 이야기를 했다고 해. 폭력을 행사한 상사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야. 다만 엄연히 직장생활을 하는 성인인데 수시로 그런 전화를 받은 상사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했을까? 그런 어머니의 태도에 다 큰 성인이자 직장인인 자식의 기분은 또 어땠을까?


부모가 마땅히 책임을 지고, 자신의 손을 잡아주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일에도 분명 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봐. 부모가 그 선을 넘어버리는 순간, 자식의 삶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겠지. 하나의 인격체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 주체자가 아닌 누군가의 말에 따르는 꼭두각시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거야. 끊임없이 자기 비하를 하고, 그 삶에서 빛을 잃게 되겠지. 무엇이 진정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인지 잊어버리고 말 거야.


아가야, 내가 너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말은 너의 삶을 간섭하겠다는 말도 아니고,
네가 원치 않을 때조차 옆에 꼭 붙어있겠다는 말도 아니란다.


너의 엄마로서, 그 자리를 마땅히 지키고 있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일 뿐이야.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지. 그러니까 너의 인생은 네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당연해. 내가 그런 권리까지 앗아갈 자격은 없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엄마는 엄마의 자리를 지키고, 너는 너의 삶을 만들어나가면 되는 거야. 너의 삶에 자꾸만 끼어드는 잔소리꾼, 참견쟁이가 아닌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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