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천방지축이어도 괜찮아
아이들은 여러 번 사고를 치고, 실수를 거듭하는 게 당연한데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어른들은 벅차다고 느낄 때가 많아. 발달단계나 시기적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을 때가 있더라. 감정적으로 힘이 들고, 육체적으로도 지치기 때문인 것 같아.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평생의 시간을 들이는 일이고, 자신의 일부분을 떼어주는 것과도 같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 아이를 기르는 어른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어. 너도 너 닮은 자식 낳아 똑같이 길러보라는 말이 있지. 그만큼 아이를 기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백 마디 말보다는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일 거야. ‘나’라는 존재를 길러내는 일이 어떤 일인지를 그나마 내 자식을 직접 키워보면서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일 거야.
너는 아마도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겠지. 종종 그 사실을 잊어버린 채 오로지 너만을 다그치게 되지는 않을까 늘 조심스레 생각해 보아야겠어. 잘하는 것도 나를 닮아 그런 것이고, 못난 것도 나를 닮아 그런 것이라 생각할 수 있도록 애쓸 줄 알아야지. 나는 네가 그럴 수도 없거니와 처음부터 철든 아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는 것이 맞아.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 당연해. 다른 사람의 입장까지 고려해 보기 전에 자신의 감정부터 이해하려 드는 것이 맞아. 어른들의 눈에는 말썽꾸러기, 천방지축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모두 네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부터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해. 자기 자신의 맨 얼굴을 오롯이 직면할 줄 알면, 자연히 다른 사람의 모습도 너의 시선 안에 들어오는 때가 있지 않을까? 내가 행한 일로 인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느낀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 지도 한 번 살펴보렴. 물론 언젠가 네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연히 터득해 나가겠지만 말이야.
엄마는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편지로 남기면서 종종 나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할 거야. 깊이 생각해서 깨우친 것들을 어느 순간에는 몽땅 잊어버리고 지내기도 해서 그래. 너를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엄마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란다.
엄마가 또 한 가지 느끼는 것이 있어.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어른들의 이해와 올바른 인식이 필요해. 그런데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부터 생기는 어려움에 부딪히는 때도 있지. 그리고 한 아이를 대하고, 돌보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잖니. 사람마다 양육태도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어있는데 한 가족이라도 서로 다를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양육태도인 것 같아.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나 태도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도 자주 생겨. 아이가 잘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은 같은데도 서로 불편해질 수 있는 미묘한 상황인 것이지. 아이를 키우는 데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 뚜렷하게 정의 내릴 수도 없고. 보통은 사회적인 통념에 많이 따르게 되겠지.
나의 작고 예쁜 아기가 이렇게 길고도 어려운 편지를 읽을 수 있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때가 언젠가는 오려나? 너를 만난다고 생각해도 아득한데, 그런 아주 먼 미래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구나. 엄마는 너의 생각을 할 때 정말 괜한 걱정을 하곤 해. 나중에 정말 나의 아이가 공부하는 걸 너무 싫어하면 어쩌지? 만약 학교에서 친구관계로 힘들어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누군가 나의 아이를 무시하는 것 같으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지? 내가 이런 생각들을 이야기하면 엄마 친구들은 무슨 그런 생각을 벌써부터 하냐고 해. 그러면서도 각자마다 궁금해하고, 걱정도 하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른다 생각하면 정말 남 일만은 아니야.
나도 여느 부모들처럼 너를 애지중지 사랑하고 아끼며 키우게 될 텐데 어느 날 철이 덜 든 네가 나를 왜 낳았느냐고 원망하듯이 이야기하면 어쩌지? 철없이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아. 하지만 부모가 되려면 그런 순간들까지도 잘 견딜 수 있어야겠지. 그렇지? 정말 부모가 되려면 마음이 몇 곱절은 더 단단해져야겠다. 부모가 되고 나면 친구들보다는 그 나이 또래의 동네 엄마들과 더 자주 어울리게 된다고 하던데. 나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 모습에 너의 모습을 비추어보곤 하겠지? 누군가와 비교한다는 걸 알면 네가 얼마나 속상할까? 너는 너 자체로 소중하고, 특별한 아이인데.
가끔 TV프로그램에서 대화가 단절된 가정의 모습들이 비추어지면 마음이 참 안 좋더라. 생각보다 그런 가정이 많기도 하고. 혹여 네가 엄마, 아빠와 대화하기를 거부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너를 그대로 놔둔 채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너를 위한 배려일까? 그렇다고 억지로 대화하자고 할 수도 없는 걸. 대화는 서로가 충분히 마음을 연 상태에서 가능한 일이니까.
사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의 하루하루는 그리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어. 아이들은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생각해서 해 주는 말에도 토를 달기 일쑤지. 부모를 속상하게 하는 말은 또 어쩜 그리 잘하는지. 그런 것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어딘가에서 배우기 시작한 것처럼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데에 도가 트이기도 하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충격을 주기도 하고. 어떤 어른들은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하지? 그런데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들을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단 말이야.
그래, 네가 천방지축이어도 괜찮아. 아이들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무엇에든 도전해보고 싶을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해. 일탈은 괜찮지만 탈선은 위험한 일이야. 물론 엄마도 일탈과 탈선의 경계를 잘 잡아보도록 할게. 만약 네가 도무지 제어가 되지 않는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무언가 이유가 있는 거겠지. 너와 충분히 소통하고, 너의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노력할게. 너의 이야기를 들을 때 충분히 들어주도록 할게. 너의 생각이 어떤지, 너의 기분이 어떤 지에 대해 집중하도록 할게.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너에게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애써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