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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의 봄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완연한 봄을 이곳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시간이 빠르다. 2년 전 3월의 어느 토요일, 나는 한 허름한 자동차 수리점에 내 차를 맡기고, 의자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봄의 따뜻한 공기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고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시 뒤 수리공이 다가와 Inspection이 끝났다고 말해 주었고, 내 차의 앞 유리창에는 2025년 3월이라는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2년 뒤에 다시 주에서 시행하는 자동차 검사를 다시 받으러 오라는 유효기간 표시였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다음날 일요일에는 매주 시행하는 주재원 회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동차 검사를 받고 회의 준비를 하기 위해 사무실에 힘든 발걸음을 이끌고 돌아가야 했다. 아주 잠깐 눈을 감았던 그 시간이, 2년 전 뉴저지의 봄을 느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 봄에 나는 오전 8시부터 새벽 3시까지 매일같이 사무실에서 일하며 나올 수 없었고, 그렇게 그 봄은 지나가 버렸다.


매주 주말에 출근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아들을 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어느 일요일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하며, 그날 발표할 내용을 속으로 생각하며 아주 초조하게 집을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들이 기분이 안 좋았는지, 아들은 왜 아빠는 주말에 출근하는 건지? 가면 언제 오는지? 왜 매일 밤늦게 들어오는지? 몇 번을 물어보더니, 내가 나가는 문 앞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나라 잃은 백성이 우는 것처럼 목 놓아 울었다. 나는 아이를 달래려 했지만, 그것은 이미 지난 수년간 쌓아져 올라간 탑이 무너지는 것처럼,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도 이미 아이를 달래기를 포기했다. 아이는 세상이 떠나가길 원하는 것처럼 울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나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회사에 목을 매도록 어려서부터 교육과 세뇌를 받으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지, 스스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날도 아이를 간신히 떼어 놓고 회사에 출근해서 회의에 참석했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경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떠안으며, 욕을 먹고 사과를 하고 자아비판과 반성을 해야 했다. 그리고 또 야근을 하고 이미 아들과 아내가 자고 있을 시간에 퇴근을 하게 되었다. 돌아가면서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에 대한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 체계가 가르쳐 주는 대로 교육 과정을 충실하게 따라왔고, 성과를 냈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매출이 큰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그리고 이것이 정답이라고 굳게 믿고 주재 파견을 나와 있는데, 그럼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이 잘못된 길일까?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나는 나 스스로에게 내가 걸어온 이 길이 잘못된 길이 맞다는 답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지금 내 인생을 수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정말 중요한 것은 잃어버리고 크게 잘못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들에게 말했다. "잘 들어, 아빠는 이제 이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 준비할 거야. 아빠가 이 회사를 그만두고 우리 가족이 보내는 시간이 엄청 많아질 거야." 물론 그 다짐이 실현되기까지는 그 이후로 1년이 넘게 걸렸지만, 어쨌든 그것이 시작이 된 셈이다.


예전 회사의 동료가 오늘 갑자기 카톡을 보내왔다. 예전 회사의 CEO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뉴스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분은 수시로 임원들을 불러 모아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과음하고 동석한 사람들에게도 강제로 술을 권해서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 정도로 술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딸의 결혼식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을 것이고, 그곳에서 사건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내가 퇴사를 안 하고 끝장을 보리라는 마음가짐으로 남아 있었다면, 그들과 비슷한 무리에 들어가서 결국은 그런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인생은 덧없다. 그리고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다. 내 인생에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백번 스스로에게 물어본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가족과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을 데리고 미국에 남아야 했고, 20년 가까이 다닌 직장을 내려놓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 이곳은 가족이 모든 사람의 1순위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참 어려운 곳이다.


나는 오늘 2년만에 차량 검사를 다시 받게 되었다. 유효기간 2년이 경과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따스한 봄바람도 걸터 앉아 쉴 의자도 없었다. 2년전에 검사를 받았을 때는 35불을 냈는데, 오늘 방문한 곳은 75불을 내라며 Bill을 내밀었다. 그래도 정비소 주인 아저씨의 인상이 좀 더 착해 보여서인지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계절의 변화가 신비롭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침에 눈이 오면 어떻게 치울지, 젖은 눈인지 마른눈인지에 따라 치우는 전략을 달리 세워야 했는데, 그 계절이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제 집 근처의 퍼블릭 골프 코스를 아들과 언제 나갈 수 있을까 달력을 보며 날을 세고 있다. 한국에서 좀처럼 걸리지 않던 환절기의 감기도 달고 살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무언가 꿈을 꿀 시간과 겨를이 있어 다행이다. 10년 뒤, 20년 뒤 무엇을 해서 먹고살지 걱정과 고민이지만, 그래도 아들과 아내가 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은, 단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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