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반대로 뒤에서 앞으로 미국 생활 10개월째
나는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좋아한다. 나 홀로 집에, 스타워즈, 인디애나 존스, 쥬라기 공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영화 음악 속에서, 그는 나를 늘 미지의 세계와 희망의 나라로 데려가곤 했다. 내게 그 희망의 무대는 언제나 미국이었다.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을 보면 때로는 부럽다. ‘나도 학창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면 지금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와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선이 있다. 바로 스몰 톡이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 동료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나는 여전히 낯설다. 매년 이맘때의 날씨 이야기를 하는 듯한데, 미국 생활이 채 1년도 안 된 내겐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잡음일 뿐이다. 말없이 듣는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이민 1세대는 유학으로 시작해 취업, 비자 해결, 결혼, 그리고 집 마련이라는 순서를 밟는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가장 먼저 집을 샀다. 아내와 아들이 살아야 할 보금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다운페이를 내고 30년짜리 모기지를 얹었다. 매달 빠져나가는 대출금은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걸 가르쳐 주기에 충분했다.
다행히도 영주권은 비교적 빨리 얻었다. 한국 대기업에서 주재원으로 ‘닭공장 같은 근무’를 버텨낸 덕분이었다. 그러나 미국 회사에 취업하는 건 달랐다. 10개월 동안 1천 군데 넘게 지원했고, 50곳 가까이 면접을 봤다. 결국 마지막 한 군데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남들과 다른 순서로 정착하며, 나는 인생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의 인생도 같을 수 없다는 것. 태어나는 시기는 비슷할지 몰라도 떠나는 날은 모두 다르다는 것. 그렇기에 남과 비교할 필요 없고, 오직 나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삶을 살면 된다는 것.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늘 비교하며 살아왔다. 원하는 등수를 위해 공부했고, 학위와 시험 합격을 좇았다. 성취할 때도 있었지만 실패할 때도 많았다. 실패가 오히려 좋은 약이 되기도 했고, 성공이 오히려 자만과 게으름을 불러오기도 했다.
삶은 결코 가만히 서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가르치고, 때로는 꾸짖으며, 우리를 습관 속 안주에 머물게 두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
다만 바라는 것은 하나다. 어제의 나와 비교했을 때 오늘 단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디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단 1%라도 성장했다면, 그것이 지금의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