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

a.k.a 오직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들

어느덧 미국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지 6개월이 되어 간다. 여전히 한국이 그립다. 그래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한국 뉴스를 찾아보는 것이다.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렇게 스스로 묻고 답하다 보면, 아직 미국 생활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소식을 알고 싶을 땐 그저 유튜브를 켜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가 평소 관심 있던 주제들이 실시간으로 정리되어 올라오니, 하나에서 열까지 친절한 브리핑을 받는 기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유튜브는 미국 회사의 플랫폼이지만 정작 미국의 소식보다는 한국의 소식을 더 생생하고 빠르게 알려준다. 아마도 저작권 문제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뉴스나 쇼 같은 콘텐츠를 원작자 허락 없이 편집해 올리는 일이 위험하다. 하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에 유튜버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원작자들도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쏟아낸다. 그 결과 한국어 콘텐츠가 영어 콘텐츠 못지않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진 셈이다.


나는 야구를 좋아하지만, 미국에서 메이저리그를 보기란 쉽지 않다. 따로 구독료를 내거나 전용 사이트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KBO 하이라이트는 언제든 자유롭게 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 하이라이트를 제때 찾아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때로는 한국에서 살던 동네가 그립다. ‘슬세권’이라 불리던 집 근처의 작은 카페, 편의점, 분식집, 과일 가게들이 눈앞에 선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는 뉴저지 외곽 마을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이곳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고, 카페를 가려면 차를 타고 주차한 뒤 들어가야 한다. 게다가 좌석도 오래 머물기엔 쾌적하지 않다. 한국에서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몇 시간씩 공부하던 시간이 사무치게 그립다.


한국에서는 오후 4시 무렵이 되면 메신저가 반짝였다.
“선배님, 오늘 번개 어떠세요?”, “오늘 파트 회식 있나요?”, “동기들끼리 모일까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졌고, 맛집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때로는 막차를 놓쳐 후배 집에서 자고 다음 날 출근했던 기억도 있다.

미국의 직장 문화는 다르다. 동료에게 저녁을 함께하며 친목을 다지자고 제안한다면 아마도 정중히 거절을 받을 것이다. 겉으론 가족과의 약속이 있다고 말하겠지만, 속으로는 ‘이상한 사람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선후배·동기 문화는 분명 힘이 되어 주었다. 칭찬을 들을 때, 후배가 배움을 청할 때, 나는 사회인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문화가 없다. 팀워크라 해도 서로를 일일이 챙기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성과를 내고 리더십을 발휘해 팀에 공헌할 때만 인정받는다. 그렇지 못하면 어느새 ‘저성과자’로 낙오되어 버린다.


이쯤 되면 내가 한국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엔 빛과 그림자가 있다. 한국에는 없지만 미국에서 찾은 것도 있다. 바로 ‘가족’이다.

한국에 있을 땐 가족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아내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고민을 안고 사는지 몰랐다. 어머니의 건강도 무심히 지나쳤다. 나는 그저 ‘잘 나가는 직장인’이길 바랐고, 회사가 내 삶을 보장해 줄 거라 믿었다. 그 속에 가족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야 나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내가 이곳에서 좋은 교육자가 되길 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완전한 천국도, 완전한 지옥도 없다. 다만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느냐에 따라 그곳이 가장 좋은 곳이 될 수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내가 가족과 함께 삶의 가치를 발견해 간다면 그곳이 바로 나의 가장 소중한 터전일 것이다.




keyword
이전 19화인생의 비상대책 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