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

010 개공(皆空)

by 동사로 살어리랏다

나는 색수상행식 5가지로 뭉쳐진 덩어리다. 나는 다섯 무더기, 오온(五蘊), 나들이다.


무더기, 뭉치의 특징은 첫째, 하나가 아니라 여럿, 적어도 둘 이상이 ‘모여’ 붙은 것이다. 따라서 둘째, 모인 것이 나누어지면 그것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 버리는, 즉 불변하는 고유의 성질인 자성(自性)을 가지는 게 아니며 따라서 셋째, 인 것도 아니며 닌 것도 아닌 것이다.


색, 수, 상, 행, 식 다섯 요소 하나하나도 마찬가지다. 색도 무더기요,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




하얀 종이 한 장을 놓고 가만 들여다보자. 종이가 내 앞에 있기까지의 나무가, 그 나무를 키운 태양과 구름과 흙과 물이 보이는가? 토양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바위와 바람의 풍화작용은? 나무를 실어다 내는 마차와 말 그리고 말이 먹는 건초 더미는? 건초 더미를 만드는 농부와 농부가 입은 옷의 실을 제공한 누에는?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다.


니체 보살의 법문이다. 있는 것들은 여여(如如) 본체(체體)가 다양한 개별상(상相)들로 두루두루 펼쳐진 작용(용用)이기 때문에 있는 것들은 모두 진여(眞如) 일 수밖에 없지만, 그 어떤 것도 그것 독립적으로 있을 수 없고 다른 것이 있어야 비로소 있게 된다. 그것은 그것 아닌 모든 것으로 이루어졌기에 그것이라 부른다. 종이는 없다. 종이는 종이 아닌 모든 것들로 이루어져 종이라 부를 뿐이다. 세상 모든 것(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은 이러하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그래서 제법 실상은, 그것이 무엇이든 인연(因緣)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사건(event)의 흐름일 뿐이다. 있고 없음은 개별적, 독립적, 고정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연기(緣起)라, 반야심경이다. 불변하여 고정된 고유의 성질이란 원래 없다. 본무자성(本無自性)이라 쓰고 공(空)이라 읽어, 반야심경이다.


나는 색수상행식 5가지로 뭉쳐진 덩어리다. 나는 다섯 무더기, 오온(五蘊), 나들이다. 그런데 오온개공(皆空)이다. 오온 전부가 공이라, 나는 없고(무아無我) 나는 공이다(아공我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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