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깨어난 나, 간밤의 꿈이 꿈이었음을 자각하는 나,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면서 파안대소하는 나, 나른한 오후 커피 한 모금 머금던 나, 가까운 사람의 스쳐 지나치듯 한 말이 못내 신경을 떠나지 않는 나,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 다독이며 글 쓰고 있는 나, 내일은 부모님께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다짐하며 잠자리에 드는 나’가 없다면 세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결국은 ‘나는 무엇인가’, ‘나를 바로 알자’로 귀착되는 것이 불교의 근본 화두다. 모든 것의 의미가 나로부터 시작하고 나로 끝나기 때문이다. 특히 고통과 고통 해방의 시작과 끝도 바로 ‘나’라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직관에 많이 의존했다면, 이제부터는 직관에 불교 특유의 이론과 논리가 더해진다. 본격적인 반야심경의 시작이다.
불교와 반야심경에 따르면,
나는 눈(안眼), 귀(이耳), 코(비鼻), 입(설舌), 피부(신身) 다섯 감각기관과 이를 통솔하는 뜻(의意)이 더해진 6가지 근(根)이 외부 세계를 각각 만나, 형상을 눈으로 보고(색色), 소리를 듣고(성聲), 냄새를 맡고(향香), 맛을 알고(미味), 몸으로 느끼며(촉觸), 마음으로 아는(법法) 6가지 경계를 만든다.
전자를 육근(六根), 후자를 육경(六境)이라 하며 육근과 육경이 합해져 12처(十二處)를 이룬다. 육근이 인식 주체인 인간이고, 육경은 인간을 둘러싼 세계 현상을 의미한다. 그리고 육근이 육경이 만나면 식별 작용이 일어난다. 눈과 형상이 만나면 눈의 식별 작용, 즉 안식(眼識)을 만들고 그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그 각각이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그리고 의식이다. 이 6가지 식을 육식(六識)이라 하고, 6근+6경+6식=18계(十八界) 세상이 된다.
이러한 인식 작용 체계 하에서 나는 육체(색色)를 통해 외부 세계와 커뮤니케이션하여 느낌을 받아들이며(수受), 그 느낌을 정리하여 특정 관념을 만들어 지각(상想)하고, 무언가 적극적으로 하려는 의지(행行)를 품으며,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대상을 구별하고 인식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인 식별(식識)을 한다.
한 마디로, 나는 ‘색수상행식’ 5가지로 뭉쳐진 덩어리다. 나는 다섯 무더기, 오온(五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