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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침묵과 수용을 구분하자

by 이다한



우리는 종종 침묵을 수용으로 착각한다. 아무 말이 없다는 이유로 동의했다고 여기고, 반응이 없다는 이유로 괜찮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침묵은 말의 부재일 뿐, 의사의 표현은 아니다.


침묵은 동의도, 긍정도 아닐 수 있다. 그저 말할 힘이 없거나, 말해도 소용없다는 체념일 수 있다. 혹은 지금은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침묵의 진짜 의미는 상황과 맥락, 그리고 그 사람의 내면을 살펴보지 않으면 쉽게 오해된다.


수용은 다르다. 수용은 의사 표현이다. “알겠어.” “그래, 그렇게 하자.”라는 식의 분명한 반응이 수반된다. 수용은 나의 입장을 정리한 뒤, 그것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행위다. 침묵은 그 과정을 생략한다.


침묵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을 편의적으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특히 권력 관계나 감정적으로 얽힌 관계에서는 침묵이 강요된 것일 수도 있다. 그 침묵 안에 있는 감정과 생각을 들으려는 노력이 없다면, 결국 우리는 스스로에게 유리한 결론만 내려버리게 된다.


또한, 침묵하는 사람도 자신의 침묵이 오해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말하지 않음이 동의로 읽히지 않도록, 때로는 “지금은 말할 수 없다”는 의사 표현이라도 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결국 자기 입장을 빼앗기게 된다.


침묵은 여백이지 결론이 아니다. 그 여백을 채우는 건 추측이 아니라 대화이고, 오해를 막는 건 침묵 위에 덧씌운 긍정이 아니라 솔직한 의사 표현이다. 침묵은 수용이 아니다. 그걸 구분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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