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는 바람이고, 신뢰는 확신이다. 기대는 타인의 행동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상하는 것이고, 신뢰는 그 사람이 어떻게 하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다. 둘은 닮아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기대는 일방적이다. “그 사람이 이렇게 해주겠지”라는 생각은 사실, 내 안에서 만들어낸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실망은 기대에서 비롯되며, 실망할수록 그 기대는 애초에 혼자만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반면, 신뢰는 상호적이다. 상대에 대해 충분히 보고, 듣고, 겪은 다음에야 형성되는 것이다. 신뢰는 특정한 행동 하나가 아닌, 그 사람의 존재 전체를 바라보는 감정이다. 그래서 신뢰는 실망보다 더 오래간다.
우리는 종종 기대를 신뢰로 착각한다. “나는 너를 믿었는데”라는 말에는 사실 “나는 네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줄 줄 알았는데”라는 기대가 숨어 있다. 그래서 신뢰가 무너졌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내 기대가 꺾인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신뢰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기대는 사람을 옭아맨다. 신뢰는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고 기다릴 줄 안다. 반면 기대는 결과를 강요하고, 원하는 모습이 아니면 실망과 분노로 뒤바뀐다. 그래서 신뢰에는 여유가 있고, 기대에는 불안이 따른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믿고 싶다면, 먼저 내가 품은 기대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 사람이 해주길 바라는 마음인지, 아니면 그 사람 자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기대는 나를 위한 것이고, 신뢰는 그 사람을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