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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정리: 나를 이해하는 일

1. 미숙함과 악의를 구분하자

by 이다한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잘 몰라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아직 배워야 할 과정에 있기 때문에 실수를 한다. 이때의 실수는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것은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미숙함이란 결국 학습 중이라는 뜻이고, 그 안에는 개선의 가능성과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 경우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인내와 설명이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로 인해 타인이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미숙함이라 부를 수 없다. 알고도 행동을 바꾸지 않는 것, 타인의 고통을 알면서도 반복하는 것은 악의의 영역이다. 이 지점에서 판단이 필요하다. 모르고 그런 것인지, 알고도 그런 것인지. 이 판단에 따라 관대함의 크기와 방향은 달라져야 한다.


악의의 핵심은 ‘이용’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는 건, 그 무지로부터 어떤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모른 척하는 모든 태도가 악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흐린 눈이고, 누군가의 결함을 감싸 안는 사랑일 수 있다. 관계를 위해, 애정을 지키기 위해 모른 척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흐린 눈을 자신이 직접 이용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악의가 된다. 책임을 피하고,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고, 모르는 척을 전략처럼 쓰는 사람은 그 무지 위에 이득을 세운다.


예를 들어 공무원 조직에서 어떤 동료가 일을 잘 못할 때, 모른 척하고 눈감아주는 것은 공동체적 연민일 수 있다. 그게 흐린 눈이고 선의다. 반대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못하는 척, 모르는 척하며 일을 회피하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흐린 눈은 연민이 아니라 도구가 되고, 그 도구를 쥐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의적으로 무지한 척을 반복한다.


미숙함은 진짜 모른다. 알려주면 반응이 있다. 피드백이 전달되면 태도가 달라지고, 관계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낸다. 반면 악의는 무시한다. 반응하지 않고 흘려보내며,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반복적으로 무지한 표정을 짓는다. 이때 중요한 건 반응의 유무가 아니라, 그 무반응 속에 담긴 전략성이다. 무시하는 사람은 그만큼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다는 건 결국 관계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물론 미숙함도 발전이 없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진짜로 잘하지 못하고, 변화가 더디고, 노력해도 계속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대개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타인에게 미안해하며,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성장은 더뎌도 감정은 있다. 불편함과 죄책감이 존재한다. 반면 악의는 아무 감정도 없다. 자신의 반복에 아무 책임도 느끼지 않고, 타인의 인내를 자기 권리처럼 취급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긴다. 자신의 미숙함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간의 품격이 갈린다. 미숙함을 인식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결국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질투하기보단 배우고자 한다. 반대로, 자신의 미숙함을 감추고 외면하면서 타인을 끌어내리려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기 위해 누군가를 이용하는 악인이 된다.


미숙한 사람은 실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본다. 타인의 도움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누가 지적했을 때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악의 있는 사람은 실수 앞에서 핑계를 찾는다. 지적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자신이 아닌 남의 문제로 돌린다.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을 향해 존중이 아닌 폄하로 반응하고, 자기 위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끼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어 끌어내리려 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건, 개인 대 개인의 모든 관계는 기본적으로 미숙함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관계는 시작된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말을 불편해하는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처음부터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쪽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거나, 무심히 위아래를 나누고 갑을 관계를 만들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좋다고 스스로 을을 자처하거나, 친하다는 이유로 당연히 내 말에 따를 것이라 여기는 자세 역시 경계해야 한다.


미숙함과 악의를 구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설명해 보는 것이다. 몇 번 알려주고 반응을 지켜보면 된다. 반응하고 발전하는 쪽은 미숙함이고, 무시하거나 모른 척하는 쪽은 악의다. 구분의 기준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말은 얼마든지 꾸밀 수 있지만, 반응은 숨길 수 없다. 반응 없는 관계는 악의의 침묵이며, 침묵이 계속된다면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미숙함과 악의를 구분한다는 것은 결국 선을 긋는 일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 잘라내라는 것이 아니다. 설명하고 알려준 후에도 변화가 없다면, 그때는 관계를 정리할 때다. 상처가 반복될 때 필요한 것은 인내가 아니라 판단이다. 구분은 판단을 돕고, 판단은 삶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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