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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치와 위험분석의 출발점

by 논리회계학자

자산의 가격을 평가하는 다양한 모델들, 예를 들어 배당 할인 모형(Dividend Discount Model, DDM), 현금흐름 할인 모형(Discounted Cash Flow Model, DCF Model), 초과이익 모형(Residual Income Model, RIM) 등은 공통된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그 핵심은 바로 자산의 가격이 수익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복잡한 모델 해설 대신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ital Asset Pricing Model, CAPM)을 사례로 간단히 살펴보겠다.

CAPM은 자산의 기대수익률이 그 자산의 위험과 비례한다는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다시 말해, 수익은 위험의 함수라는 것이다. 투자 이론을 넘어, 실무자와 분석자의 시각에서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후반부에서 다루게 될 업종별 재무분석과도 직결된다.


CAPM은 자기자본비용(Cost of Equity)을 산정할 때 사용되며, 무위험수익률(Risk-Free Rate), 시장포트폴리오수익률(Market Portfolio Return), 그리고 위험지표인 베타(Beta)를 통해 계산된다. 베타는 자산이 시장 전체 대비 얼마나 민감하게 움직이는지를 나타내는 계수로, 위험의 크기를 수치화한 것이다.

이처럼 수익은 위험에 비례하며, 계산된 수익률은 가치평가모형에서 할인율(Discount Rate)로 활용된다. 자기자본비용뿐 아니라 가중평균자본비용(Weighted Average Cost of Capital, WACC)에도 포함되어 기업가치 산정의 핵심 지표로 작용한다.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분석자는 기업에서 무엇을 들여다보아야 할까? 그 해답은 위험이다. 기업 분석의 본질은, 해당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 요소를 식별하고 해석하는 데 있다. 기업은 자본을 조달해 자산에 투자하고, 이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 과정을 회계적으로 표현한 것이 재무상태표이며, 흔히 T자 형태로 시각화되어 T 계정이라고 한다.


기업은 경제의 한 구성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법인 등록을 하게 된다. 타인자본과 자기자본을 조달하고, 이를 유형자산에 투자한 뒤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판매대금을 회수하여 이익잉여금 계정에 반영하는 경영활동을 반복한다. 이러한 일련의 경영 활동은 T 계정으로 시각화 할 수 있다. 경영활동을 통해 창출한 이익은 자본총계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대변(우측)의 크기를 키우며 T 계정 전체의 확장을 의미하게 된다. 이 과정을 기업의 성장이라 부른다. 즉, 기업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경영활동의 T계정화

기업은 좌우로 넓어질 수도 있고, 상하로 길어질 수도 있다. 이 모든 현상은 기업의 성장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성장의 제약 요소는 어디에 있을까?

기업의 좌우에는 회계 계정들이 위치하고 있으나, 상하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비유하자면, 길을 걷는 도중 큰 돌부리에 걸리면 전진에 제약을 받게 되고, 넘어진다면 변동성이 위험으로 전이된 상황이다. 같은 맥락에서 기업이 성장하는데 방해가 되는 제약도 좌우, 즉 회계 계정들에 의해 존재한다. 따라서 좌측에 위치한 자산은 사업활동과 직결되며 사업위험을, 우측에 위치한 부채 및 자본은 자금 조달과 관련되어 재무위험을 발생시킨다.


기업의 위험

정리하면, 기업을 둘러싼 위험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자산에 내재된 사업위험, 둘째는 자본조달 구조와 관련된 재무위험이다. 이 두 가지 위험을 식별하고 분석하는 것이 곧 경영분석 또는 신용분석의 핵심이다. 분석자는 회계 자료를 통해 이 두 가지 위험을 파악해야 한다.

재무관리 이론에서는 기업의 가치를 영업자산이 창출하는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 가치로 계산한다. 이때 할인율에는 변동성이라는 위험이 포함된다. 재무관리 이론에서 기업의 가치는 회계학에서 말하는 T계정의 크기와 동일하다. 그렇다면 회계적 관점에서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 회계상 기업가치인 T계정에도 위험을 반영해야 한다. 앞서 기업을 둘러싼 위험이란, T 계정의 좌우에 위치한 회계 계정들이 유발하는 위험이라고 했다. 이러한 위험을 각각 사업위험과 재무위험으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회계 관점에서도 자산과 부채 항목이 야기하는 위험을 기업 가치에 반영해야 한다. 사업위험과 재무위험은 기업 분석의 핵심 축이며, 분석자는 회계를 통해 이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회계자료를 통해 위험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 이익이 발생하면 자본 항목이 증가하고, T계정의 우측뿐만 아니라 전체를 확장시킨다. 이것은 기업의 성장이며 성장의 방향은 좌우 혹은 상하일 수 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재무상태표의 좌측(자산)과 우측(부채 및 자본)이 기업 성장의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산 항목에는 유형자산, 재고자산, 매출채권 등이 있다. 이들은 각각 감가상각비, 재고자산평가손실, 대손충당금 등 비용 발생의 원인이 된다. 반면, 부채는 이자비용을 유발하며, 자금 조달의 대가다. 기업을 둘러싼 회계계정들이 뿜어내는 비용, 이것이 위험이다.


풀무원이라는 기업을 떠올리면 대표 상품으로 가장 먼저 두부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 이해를 돕기 위해 두부를 예로 들겠다. 풀무원은 마트에 납품한 두부가 실제로 판매되어야 비로소 매출로 인식한다. 풀무원의 T 계정에서 두부라는 재고자산이 1,000원어치 있다고 가정하자. 현재 마트에서 판매 중인 해당 제품은 1,200원에 판매되고 있지만, 유통기한이 임박한 주말에는 800원에 할인 판매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은 장부상 1,000원이던 두부의 가치가 800원으로 하락함을 의미한다. 이는 순자산 200원이 감소한 것이며, 해당 금액은 비용으로 계상된다. 비용은 재고자산 평가손실이라는 항목으로 반영되어, 매출원가에 포함되므로 전체 원가가 증가한다. 즉, 유통기한이 다가올수록 재고자산 평가손실이라는 형태의 비용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계상 위험의 시작이다.


유형자산 또한 마찬가지다. 제품을 생산하지 않더라도 유형자산은 감가상각비라는 고정 비용을 끊임없이 발생시킨다. 매출채권 역시 회수되기 전까지는 대손충당금이라는 비용을 동반한다. 이처럼, 기업을 둘러싼 대부분의 회계 계정은 형태는 다르지만 비용이라는 이름으로 위험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숫자는 항상 의미 있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기업의 리스크다. 그렇다면 T 계정의 우측에 위치한 부채와 자본은 어떨까? 이 항목들은 자금 조달을 통해 기업 활동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 자체로 금융비용을 유발한다. 특히 부채는 이자비용이라는 형태로 자금 사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고 재무위험으로 이어진다.

정리하면, 기업의 자산과 부채는 각각 사업위험과 재무위험을 발생시키며, 이 위험은 결국 숫자와 비용의 형태로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친다. 회계 정보를 분석하는 목적은 숫자 속에 숨겨진 위험을 식별하고,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있다.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계속기업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T계정의 우측, 즉 재무위험에 대한 분석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반면 주주의 입장에서는 수익 창출 가능성과 사업의 성장성에 대한 관심이 더 크므로, T계정의 좌측에 위치한 사업위험이 더욱 중점적으로 분석된다. 후반부에서 다룰 업종별 기업 분석에서 제시하는 기본 분석 메커니즘은 주주든 채권자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만 분석의 목적과 관심사에 따라 중점을 두는 요소와 비중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필자의 경우, 증권사 소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할 때는 주로 수익성 중심의 분석을 강조하며, 계속기업가치에 대한 설명은 최소한으로 다룬다. 반면, 은행이나 여신기관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재무구조, 유동성, 현금흐름 등 계속기업가치에 대한 분석이 강의의 중심이 된다. 즉, 같은 재무제표를 분석하더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과 초점이 달라지는 이유다.


기업 분석의 출발점은 비즈니스 모델의 이해다. 어떤 산업에 속해 있고, 무엇을 생산하고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에 대한 답은 자산 구성과 비용 구조를 결정짓는다. 예를 들어 반도체 소재 기업은 제조설비를 보유하고 있어 감가상각비가 큰 반면, 반도체 장비 기업은 외주생산을 통해 제품을 공급하므로 유형자산보다 연구개발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다.

분석자는 자산과 부채가 각각 어떤 방식으로 위험을 드러내는지를 회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실질적인 경영 및 투자 인사이트를 얻어야 한다. 숫자를 읽는 능력은 결국 기업을 보는 통찰로 이어진다. 회계자료를 단순한 숫자가 아닌 이야기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기업 분석의 문이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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