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도착
뽀가 쓰는 3월 1일 Diary
계속 뒤척이는데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자고 있는 란이가 부럽다. 나는 잘 때 예민하고, 잠자리 바뀌면 잘 못 자기도 해서 시차 적응은 좀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잠도 안 오고, 피곤함에 눈만 감고 있다가 새벽 5시에 란이와 같이 나갈 준비를 했다.
예상보다 일찍 나갈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다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나갔다. 바로 눈앞에서 공항 가는 버스를 놓쳐서 아쉬워하는 나에게 그곳에 버스가 온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하며 좋아하는 란이. 앞으로 우리 여행에 아주 긍정적인 역할을 해줄 것 같다.
다음 버스를 타고,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란이는 아침에 숙소 창가에서 그리던 그림을 마저 그리고, 난 다이어리를 썼다. 잠시나마 이런 여유로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좋다.
드디어 비행 3시간 만에 아이슬란드 도착!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아이슬란드는 집도, 차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였다. 사람은 살고 있는 것이 맞나 싶을 만큼 아무것도 없는 땅이 보인다. 옆에서 란이는 마치 우주 같다며 신기해했다.
별 말없이 도장을 '쾅!' 찍어주며, 아이슬란드의 입국 심사는 간단히 끝났다. 조금 기다리긴 했지만, 수화물도 무사히 찾았다. Fly Bus를 타고, BSI터미널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무거운 짐을 이끌고, 비를 맞으며, 이미 진흙탕이 된 거리를 걸었다. 짐을 더 줄였어야 했는데... 너무 무겁다. 고작 10분만 걸으면 되는 거리가 마치 1시간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란이가
"벌써 반이나 왔어!"
"거의 다 왔어!"
라고 앞장서서 걷는 덕분에 힘내서 올 수가 있었다. 같이 와서 다행스러운 순간이었다. 이런 비 오는 날에 혼자 무거운 짐을 이끌고 도착했다면... 아,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아마 혼자 왔으면, 벌써 이 여행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바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다시 정리하면서 내가 정말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평소에 나름 정리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인가 보다. 떠나기 전 짐을 정리할 때도 엄청 고민했는데, 지금 이 순간도 고민하고 있다. 모두 빼고,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절망스럽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다. 절망하고 있는데, 옆에서 란이가 초코파이를 건넸다. 우선 당 충전부터 해야겠다.
아이슬란드는 렌터카를 빌려 4명이서 여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해서 인터넷 카페를 통해 동행을 구한 상태이다. 아직 동행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레이캬비크 시내를 구경하러 나가기로 했다.
여기는 이상하게 우산을 안 쓰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가 엄청 쏟아지는 지금도 안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상하다. 우리도 쓰지 말자며, 숙소 문을 열었는데, 문 앞에서 ‘쏴아아아’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보고,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까...' 하며, 바로 우산을 집어 들었다. 비가 오지만, 그래도 짐 없이 가볍게 길을 걸으니 기분이 조금씩 좋아진다.
‘할그림스키르캬’라는 대성당이 게스트하우스를 나오자마자 보였다. 보는 순간 명동에서 보이는 남산타워가 생각났다. 레이캬비크를 떠올리면 앞으로 이 성당만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가까이서 보니 더 웅장하고 멋있는 성당이었다.
배가 고파서 핫도그 맛집이 있다는 쪽으로 걸었다. 가는 길에 집들이 너무 예쁘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많아서 계속 발걸음을 멈췄다. 상점을 하나하나 구경하고 나올 때마다 밖은 한차례 더욱더 어두워졌다. 시내 야경도 멋있고, 밤공기도 상쾌하다. 살짝 내리는 비가 이곳을 더 분위기 있게 만들어 주는 것만 같다.
드디어 핫도그 맛집에 도착했다. 아이슬란드는 물가도 비싸고, 음식도 별로라는 정보를 보고 와서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꽤 맛있었다. 통통한 큰 소시지가 들어있고, 튀긴 양파가 바삭하게 씹히고, 처음 먹어보는 특이한 땅콩소스 맛이 같이 어울려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맛이다.
배를 채운 뒤에 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한 서점에 들어갔다. 작은 서점인 줄 알았는데 5층 정도 계단이 있는 꽤 큰 서점이었다. 대체로 여기 상점들은 밖에서는 작아 보여도 안에 들어오면, 공간이 넓은 곳들이 많다. 마치 건물의 외관에 보이지 않는 비밀 공간 같아서 신기하다. 서점 맨 위층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동행들의 연락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동행이 많이 늦는 것 같다. 도대체 언제 오려나... 내일부터 진짜 아이슬란드 여행이 시작된다. 어두워지면 오로라부터 찾아다녀야겠다.
란이 쓰는 3월 1일 Diary
오전 9시 50분
어제와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과 조금 다른 느낌으로 레이캬비크로 떠나려 한다.
우리는 지금 게이트가 열리길 기다리며 공항에 앉아있고, 여전히 짐은 많다.
오후 3시 11분
기대하고 기대하던 아이슬란드와 마주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첫 느낌은 "음.... 이곳이 우주인가..? 어떻게 이렇게 광활한 대지에 집이 한 채도 없고 나무조차 보이지 않지?"가 첫 느낌이었다.
아이슬란드의 입국 절차는 상당히 간단했다. 입국심사의 줄은 매우 짧았으며, 심사를 기다리는데 걸린 시간은 10분조차 되지 않았다. 심지어 입국신고서도 작성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쾅쾅’ 우리의 여권에 도장을 찍어준 후 간단한 입국 심사는 끝이 났다.
심사가 끝난 후 짐 또한 다른 공항에 비해 비교적 빨리 찾았고, 무사히 짐을 만난 우리는 아이슬란드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구름이 잔뜩 낀 아이슬란드와 첫 만남은 새롭고 새로웠으며, 밖에 나온 우리는 생각보다 춥지 않은 날씨에 무거운 짐을 원망했다. (짐 안에는 겨울을 대비한 옷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주 무거웠던 나의 심경을 표현하기 위해 짐을 ‘짐 덩이’라 표현하겠다.)
오늘의 일정 중 짐 덩이와 함께하는 일정은 레이캬비크에 있는 우리의 숙소로 가야 하는 여정.
뽀가 런던을 떠나기 전에 레이캬비크로 가는 공항버스를 알아봐 놓아서 나오자마자 버스 티켓 창구로 향했다. 버스를 알아보았던 뽀에게 티켓 구매를 맡겼는데, 뽀가 지갑을 못 찾아서 찾기 위해 여기저기 가방을 뒤적뒤적했다.
다행히 가방 깊숙이 들어가 있던 지갑을 찾고, 두 명에 60000원이 넘는 돈으로 레이캬비크 시내까지 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아이슬란드의 첫 도로를 질주하는 중이다.
오후 8시 37분
멋졌던 레이캬비크 시내투어를 마치고 방 안에서 동행을 기다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7시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와서는 아직도 깜깜무소식에 도착을 하지 않는다. (차를 만들어 오나....?!) 아무튼 오늘의 여행을 글로 잠깐 정리하려 한다.
비가 조금 많이 쏟아지는 오늘, 아이슬란드에 도착하고 레이캬비크로 왔다.
무거운 짐 덩이를 안고 숙소까지 오는 길이 조금 힘들었지만, 제대로 된 첫 여행을 즐기기엔 전혀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뽀는 힘들었는지 숙소에서 내가 준 초코파이로 당 충전을 하고 다시 살아났다.) 방에서 앞으로의 편안한 여행을 위해 아이슬란드 짐을 따로 패킹하고, 시내 관광을 위해 숙소를 나섰다.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갈 우리의 목표지점은 tv에도 나왔던 맛집이라는 핫도그 가게.
숙소의 위치가 아주 좋아서 핫도그 가게까지 가는 길에 아이슬란드 시내 관광에서는 꼭 들려야 하는 할그림스키르캬를 지나갈 수 있었고, 예쁜 가게가 즐비한 시내를 보고 올 수 있었다.
할그림스키르캬는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웅장하고 멋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압도적인 크기에 놀라웠고, 유럽 교회의 웅장함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유럽의 흔한 성당과는 다르게 조금 현대적인 디자인을 띄고 있는 할그림스키르캬는 마치 엄청 큰 파이프 오르간 같았다. 입구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퍼져 나가는 수많은 기둥들이 데칼코마니 하듯 똑같은 규칙을 가지고 서 있었는데, 이 모습이 마치 파이프 같았기 때문에다. 재미있는 상상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다른 곳을 둘러보고자 상점가로 걸어가는데, 운이 좋게도 종소리가 울렸다. 뽀와 함께 가던 길을 멈추고 종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와.. 내가 유럽에 왔구나, 진짜 여행이 시작됐다.’
여행을 시작한 지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흘렀지만, 여행길에 올랐다는 느낌을 느끼기엔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마음을 비우고, 여행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탓인지 런던의 공항이든, 숙소든,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에 온 느낌 정도? 한국을 떠났다는 느낌이 아직 크게 다가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할그림스키르캬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국과 다른 풍경인 아이슬란드의 상점가를 바라보니 이곳은 이태원이 아니었다.
상점가 주변을 맑게 울리고 다니는 종소리를 들으며 이번 여행이 행복하길, 우리에게 큰 의미로 남기를 마음 한구석에 다시 세기며, 상점가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레이캬비크의 상점가는 아주 아기자기하다. 높지 않은 건물 1층에 주변보다 밝은 불빛으로 반짝이 것은 물론이고, 내부에 귀여운 북유럽풍의 소품들이 ‘나를 데려가 줘’ 하고 유혹한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보면서 혼이 빠진 우리는 수많은 상점들을 지나며 사진을 찍고, 몇 군데는 들러서 기념품을 구매하였다. 사고 싶은 기념품들이 너무 많았으나, 우리는 절대로 짐이 늘어나면 안 되기에 비교적 무게와 부피가 적게 나가는 기념품을 골랐다. 나는 엽서와 그림책을 뽀는 자석과 그림책을, 구매한 뒤 기념품들을 가방에 담았다. 이 작은 기념품들이 얼마나 비싸던지 새삼 아이슬란드의 물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은 기념품들이 주는 만족감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상점을 나와 우리의 목표지점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상점을 들르면서 혼이 팔린 우리는 ‘우리가 왜 나왔었지?’ 하고 목적을 잠시 상실했었다. 하지만 배가 고파진 우리는 자연스럽게 목표지점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래! 맞아, 우리는 핫도그를 먹기 위해 이 비를 뚫고 나온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핫도그 가게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 핫도그 가게는 노점이었다.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곳은 없고, 서서 먹는 테이블이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데, 안타깝게도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테이블에 서서 여유롭게 먹을 수가 없었다. 출발하기 전에는 들고 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사진은 무슨.. 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먹고 비를 피하는 데에 집중했다.
뭐.. 앞으로 사진 많이 찍을 거니까 하며 위로하며 핫도그 가게를 떠났고, 시간을 보니 이렇게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조금 더 놀다가 동행 연락 오면 시간 맞춰 들어갈까?” 하고 뽀와 얘기했고, 우리는 또다시 기념품 가게 탐방과 카페를 들르며 돌아다녔다. 비가 많이 와서 조금 추워진 우리는 상점가를 볼 수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로즈 레모네이드와 오렌지주스를 사서 여유를 만끽했다. 사진을 찍고 놀고 있는데 드디어 동행한테 연락이 왔다.
공항에 도착했다고, 이제 렌터카 받아서 출발하겠다는 메시지를 받고 우리는 동행을 맞이하기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벌써 이 길들이 익숙해졌는지, 둘이서 즐겁게 레이캬비크 시내를 활보하는데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어쩐지 기분 좋게 취해있는 외국인들은 우리에게 맥주를 좋아하냐며 물어보면서 오늘이 비어 데이라고 말해줬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오~ 그래?’ 하면서 리액션을 해주자 우리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나 보다. 30년 전부터 있었던 날이라며 엄청 빠른 영어로 생기게 된 배경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데.. 사실 잘 알아듣지 못했다. 너무 아쉬웠다. 조금만 더 영어를 잘했더라면 길에서 만난 그 외국인들과 더 재미있는 수다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언어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이다. 틈틈이 공부를 더 해야겠다.
그림도 다 그리고 기나긴 일기도 다 썼는데 아직도 동행 애들이 숙소에 도착을 안 했다. 정말.......차를 만들어서 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