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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비 Oct 13. 2021

수영 못 하면 죽어요

운동 중독

"뭉치!"


어딘지 발발이 개 같은 느낌을 주는 '뭉치'는 수영장에서 불리는 내 별명이다. 내내 연이어 다치던 때가 있었는데 '뭉치'는 그때 만들어졌. 


뭉치의 발단 샤워바구니를 헤집다가 면도기에 생살을 뜯기는 사건에서 시작됐다. 빨리 수영하고 싶어  바구니 안을 보지도 않은 채 수경을 걸터듬다 수경 대신 면도날을 잡아버린 것이었다.


검지 손가락 끝 날라간 순간에 '오늘 수영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뿐 이었다. 강사님이 응급처치를 해주며 "당분간 수영 못하겠네"라 했을 때도 아픔을 참고 보란듯이 입수했다.


방수밴드의 방수란 물에 푹 담가도 된단 뜻이 아니라  생활방수의 뜻이라는 것 통증으로 깨달았다. 찌릿함에 나도 아프긴 했지만, 방수 밴드 아래 보이는 새빨간 속살 때문에 보는 사람들이 더 아파했다.


손가락이 아물 즈음엔 엄지두덩을 다쳤다. 양배추 샐러드를 해 먹겠다며  칼질을 하다 엄지손가락 아래 엄지두덩을 썰어버린 것이다.


손바닥을 꿰매느라 2주는 수영을 쉬어야 했는데 마저도 못 참고 며칠 앞당겨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완전히 뭉치는 못 말려였다.


사람들은 내가 손에 악감정이 있다고 의심했는데, 머지않아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손이 아닌 이마를 크게 다쳤으니까.


우리 수영장은 금요일마다 스타트대에서 다이빙 연습을 한다. 사람들의 입수 동작을 유심히 보며 어떻게 뛰면 멀리, 예쁘게 입수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때 나의 눈을 사로잡은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스타트대를 발끝으로 밀어 두 팔을 뒤로 뻗었다가 잽싸게 앞으로 돌려 야수같이 뛰어올라 부드럽게 입수했다.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한 나는 따라 했다. ' 팔을 뒤로 했다가....'

쿵!!!!


지구가 날 끌어당기는 속도는 생각하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아직 팔을 뒤로 하는 단계를 생각 중이었는데 그만 수영장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정말 세상과 작별할 뻔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은데 다이빙하다가 머리를 처박고 코믹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웃긴 상황 때문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숨기며 괜찮냐고 물어봤다. 아파 죽을 거 같다 대답을 때도  때문에 수모가 점점 쪼여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모를 벗으니 머리에 계란만한 혹이 하나 생겼다.


한동안 사람들은 내 이마를 보며 MRI를 찍어야 하는 건 아니냐, 수영 쉬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때부터 나는 '(사고)뭉치'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뭉치시대는 끝난 줄만 알았는데 최근 발목을 삐끗해 깁스를 하면서 다시 뭉치가 되었다.


발목을 삐끗했음에도 그다음 날 부이를 끼고 수영한 다음 병원에 갔다. 의사의 입을 통해 '당분간 수영하면 안 됩니다'라는 사형 선고를 들을게 뻔하니 죽기 직전 발악을 한 것이었다.


목 인대가 손상되어 깁스를 해주는 의사에게 한 첫 번째 질문도 "수영해도 되나요?"였다. 의사가 운동하면 된다 친절하게 답변할 때조차 "킥 안 쓰고 팔로 수영하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여 의사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치면 수영하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몸이 아파도 수영할 수 있는 틈을 노린다. 사람들은 수영 못 하면 죽느냐고 물었는데, 그렇다. 나는 정말로 수영을 못 하면 죽을 수도 있는 인간이


수영을 접하며 오랜 기간 앓았던 우울증을 극복했다. 다친 순간 수영할 기회를 노릴 뿐이라 다행이다. 우울감 대신 수영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다행이다.  앞으로도 나는 수영에 대해 괴까닭스러운 애정을 품고, 건강하고 행복하 오래오래 수영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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