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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l 09. 2022

얼굴 얼굴들 (1)

첫날, 첫눈, 첫째, 첫걸음, 첫사랑, 첫경험, 첫출근....


모두 말만 들어도 무언가 새롭고 가슴 설레는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나요?


누구에게나 어떤 일이든, '처음'이라는 것은 굉장히 놀랍고, 오래도록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첫경험은 평생 잊지 못한다고 했던가?



동시에 '처음'이라는 것은 이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다 보니 그만큼 어렵고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교직 생활 중 처음으로 부임한 학교에서 보낸 첫해는 그런 첫경험의 설레임,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숨기고 싶은 부끄럽고도 가슴 아린 기억으로 떠오른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가 가끔씩 마음 속으로 부르는 노래다. 그리고 노래를 흥얼거릴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들.


3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교사로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내가 살던 슬라브 옥상이 있던 집, 함께 근무하던 선생님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어제 일처럼 되살아난다.



그 당시 나는 해가 질 무렵이면 자주 집 옥상 위에 올라가 좁은 공간을 이리저리 배회하면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텅 비어버린 가슴 속에서 나온  노래 소리는 저물어가는 적막한 공간 속으로 아득히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하나 둘 떠오르는 별들처럼, 그리운 얼굴 얼굴들이 가슴 속 저편으로부터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다시 그 얼굴 얼굴들을 아득한 저편 별빛 속으로 하나 하나씩 노래에 실어 보냈다. 그러면서 가만히 기원해 보았다.



'부디 저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들이 되어라.'



내가 그 아이들을 만난 건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강원도 산골 마을에 소재한 여자 고등학교의 국어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던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초였다. 처음에는 새내기 교사와 꿈 많은 여고생으로서 나도 그애들도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는 첫단계였던 만큼 그 만남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때묻지 않았던 만큼 우린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애들을 잔디밭에 키 순서대로 세워 놓고 번호를 정해주면서 내 가슴 속은 얼마나 커다란 기대와 행복감으로 벅차올랐던가.



'이 아이들을 오직 사랑과 진실된 마음으로 지도해야지. 이들 모두의 아빠가, 오빠가, 친구가 되어 줘야지.'



나는 그런 뿌듯한 기대를 품고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이상, 아니 환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현실은 그 냉혹한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 약삭빠르지 못한 데다가 소심한 성격인 나는 마음만 앞섰을 뿐 효율적인 학급 경영은 고사하고 바로 눈 앞에 놓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에도 힘겨웠다. 한 학급당 65명이나 되는 과밀 학급인데다 지방에 있는 사립학교라서 재정 지원이 신통치 않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아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야간 자율학습 지도수당이라는 명목으로 과도하게 잡부금을 거두어야 하는 일에 비하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요즘처럼 행정실에서 고지서를 보내 납부하도록 해 회계 처리를 하는 게 아니라, 반별로 금액을 할당해 주고 담임이 학생들에게서 현금으로 거두어 윗선으로 전달하는 비정상적인 방식이었다.


나름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교직을 시작한 나에게, 가뜩이나 어려운 가정 형편 중에도 공부하려고 찾아온 학생들에게서 비공식적으로 금전을 뜯어내는 학교 관리자의 행위에 침묵하고 동조한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심각한 모멸이었다.



한달 두달, 이런저런 잡무에 휘둘리다 보니 아이들을 대할 때면 괜히 신경이 곤두서고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담한 다음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한 자책감으로 가슴이 타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교사로서 수업을 잘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과제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국어라는 과목의 특성이 내게 과중한 교재 연구의 시간을 강요하고 있었다. 내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인문계 과목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데다, 대학 때는 작가가 되겠다고 소설 습작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정작 전공 과목 공부에 소홀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대학 입시를 지도하기엔 전문성이 많이 부족했다.


사랑과 질책이라는 양날의 칼을 적절하게 휘둘러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켜야 하는 과목 담당 교사로서의 기본적인 책임이 나를 더욱 어려운 지경으로 몰고 갔다.


열심히 교재 연구도 하고 교수 방법도 개선해 학생들의 실력을 길러줘야 하는데, 그건 번번이 마음 속의 결심으로만 머물고 말았다. 우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주당 30시간이나 되는 수업에 담임 업무, 그리고 잡다한 일에 동원되다 보니 근무 시간에는 공부할 짬을 낼 수가 없었고, 밤에는 새로 부임했다고 환영하는 동료 교사들과 어울려 술자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적당히 관계를 자를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건 생각 속에서만 머물고 말 뿐이었다.


나는 차츰 자신감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대상을 아무리 절실하게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가지고 있는 역량이 부족하고 사랑의 기술이 미숙한 경우에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자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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