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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l 13. 2022

얼굴 얼굴들 (2)



어느날 갑자기 그애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교감이 나를 부르더니 좀더 경력을 쌓은 다음 담임을 맡아야겠다고 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뿐,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할수가 없었다.


담임 교체를 하루 앞둔 밤, 반 아이들의 얼굴들이 하나 하나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의 나는 병아리들을 모두 잃어버린 암탉이었다. 바보같이 괜시리 눈물이 났다. 그렇게 될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일이 터지고 보니 너무나 마음이 쓰라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아침 조회 시간에 반에 들어가 이제 우리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출석을 부를 때, 아이들의 이름 하나 하나에는 눈물이 묻어 있었다. 작별 인사로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여러 아이들이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희들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니?'


우린 그렇게 바보같이 헤어졌다. 내가 조금만 더 마음을 모질게 먹었더라면, 누군가 일어나서 가지 말라고 매달렸더라면 나는 상황을 바꾸어 보려고 애를 썼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을 뿐,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이렇게 헤어지고 만 것이다.



누군가 말했었지.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그리고 첫사랑의 연인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고.'


그래서 난 그들과 헤어진지 몇달이 지나도록 자꾸 옥상에 올라가서 사랑의 상처를 노래로 달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후 반장이 교무실로 오더니 작은 종이 상자 하나를 내밀기에 열어 보니 가느다란 은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안쪽에 '1-3', 내가 3개월 동안 맡았던 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차마 끼고 다니지 못하고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고 다니던 반지를 혼자 옥상에 올라가 서성일 때면 손가락에 끼워 보곤 했다. 반지의 빈 공간에 손가락이 꽉 들어찰 때는 내 가슴 속의 빈 공간도 이렇게 꽉 채워질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마음이 아팠다.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요즘도 가끔씩, 어두워지는 옥상을 서성이면서 반지의 동그란 테두리를 아이들의 얼굴인 양 가만히 쓰다듬어 가며 몇번이고 같은 노래를 부르곤 하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곤 하는 얼굴'



후기


나는 이 학교에 3년간 있다가 근무 조건이 더 좋은 학교로 옮겼다.


그곳은 수업 시간이 주 20시간 정도로 적당했 고, 무엇보다도 재단의 횡포라고 할 수 있는 간섭이 없어서 좋았다.


나는 거기서 별 문제 없이 30년을 근무하고 정년퇴임을 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여기에도 해당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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