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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l 27. 2022

소나기의 소녀

황순원님의 [소나기]라는 작품에는 깨끗하고 소박한 시골의 자연을 배경으로 소년과 소녀의 티 없이 맑고 아름다운 사랑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누구나 이런, 아침 햇살에 피어오르는 안개와도 같이 미묘한 첫사랑의 감정을 소년 소녀 시절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게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중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이 [소나기]란 단원을 지도하면서 줄곧 그 옛날의 까까머리 소년으로 돌아가, 단발머리는 나풀거리며 뛰어가고 있는 소녀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 추억의 소녀를 만난 곳은 내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강원도의 산골마을이었다. 남한강 줄기가 마을 한가운데를 띠처럼 가로지르며 흐르고, 사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강이 가로지른 북쪽 동네, 그곳에서도 북쪽 산자락에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학년마다 학생 수가 30명이 채 안될 정도로 작았다. 거의 날마다 학교만 마치면 산에 올라가서 진달래꽃을 따고, 소나무 가지를 잘라 송기를 만들어 먹거나, 강에 나가 물고기를 잡으러 헤매는 따위로 보냈다.


그런데 5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잔잔하던 가슴에 놀랄만한 파문을 일으킨 그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20년이 넘게 흘러버린 지금도 그 때의 그 애 모습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계란처럼 갸름한 얼굴에 초롱초롱 빛나던 두 눈, 조그만 입술은 언제나 앙증맞게 꼭 다물어져 있었지. 그리고 시골 아이답지 않게 하얀 얼굴 위에 산뜻하게 드리워진 단발머리.....


그러나 그 시절, 그 정도의 나이일 때는 누구나 그랬을 테지만 그 때의 나 또한 단 한 번도 그 애에게 관심을 기울이거나 친절을 베푼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도리어 틈만 나면 괜한 트집을 잡아 괴롭히곤 했다. 책상에 금을 그어놓고 그 애의 물건이나 팔이 조금만 넘어와도 때리고 그 애가 아이들과 즐겨 하는 고무줄을 끊어 놓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어 학예발표회가 있었는데 우리 반이 ‘효녀 샛별’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연극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려고 눈 덮인 산을 헤매며 약을 구하다가 왕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 연극에서 그 애는 샛별로, 나는 왕자로 분해서 한 달쯤 연습을 하고, 나중에는 부모님들 앞에서 공연도 가졌다.


그러나 그때도 그 애와 나 사이의 감정에 미묘한 흐름 같은 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만 이런 여러 상황들이 저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쌓이고 쌓여 일생동안 지워지지 않을 한 장의 선명한 사진을 나의 가슴속에 인화해 좋았던 것 같다,


나이든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그 시절의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고 기억된다. 겨울 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나오지 않는 학교는 눈과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더구나 남향으로 길게 서있는 건물의 북쪽은 햇볕이 들지 않아 대낮에도 어두컴컴하고 좁은 길이 온통 빙판 투성이라서, 방학 중엔 아무도 그 길을 지나다니지 않았다.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의 어느 오후, 난 알 수 없는 마음의 충동에 이끌려 그 길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양철지붕의 골과 골에는 투명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려 짧고 길쭉한 주렴을 늘어뜨리고, 낙숫물이 떨어지는 땅위엔 무수한 수정조각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맑은 그 조각 조각들을 내려다보며 걷고 있던 나는 갑자기 눈앞이 환해진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시야 가득 담긴 것은 온통 붉은 덩어리였다. 그러나 난 순간적으로 그것이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었다.


가지런한 단발머리 아래 빨갛게 달아오른 갸름한 얼굴, 불타는 듯한 스웨터, 까만 바지... 그 애의 까만 눈동자가 수많은 언어를 담고 내게로 건너왔다. 그 눈길을 받자마자 내 온몸은 뜨거운 불길에 휩싸이며 아득한 하늘 저편으로 가뭇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애는 내 곁을 지나쳐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저만치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빙판 위에 오래오래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순간 내 가슴속에 들어와 박힌 건 수정처럼 맑고 아름다운 고드름 조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날의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두 사람이 겨울이면 아무도 다니지 않을 그 길을 그 시간에 지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고, 더구나 그 애의 집은 나룻배를 타야 건널 수 있는 강 건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한 해 동안 쌓여온 우리 둘 사이의 마음의 끈이 서로를 끊임없이 잡아당겨 그 시간의 만남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떤 운명적인 힘이 우리 둘을 그리고 떠밀었는지도....


그날 이후, 나에겐 새로운 버릇이 생겨버렸다. 추운 겨울인데도 틈만 나면 강가에 나가서 강 저편을 망연히 바라보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 기다림 속에 개학이 되었다. 그러나 곧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시골이라 찻길도 없어 나룻배에 이삿짐을 싣고 30리가 넘는 물길을 탔다. 이삿짐 사이에 끼여 앉아 흐르는 물결에 흔들리며, 멀어져 가는 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출렁이는 물결 위에 그 애의 얼굴이 끊임없이 떠내려가고, 다시 나타나서 또 떠내려가곤 했다.


도시로 나와 정신없이 지내느라 그 애는 내 의식 저편으로 밀려났지만, 길을 걷다 예쁜 꽃을 만나면 그 애의 얼굴로 피어났고, 고요한 밤하늘에서 유독 빛나는 별을 찾으면 그 애의 이름으로 불리곤 하였다.


돌이켜 볼 때, 그 첫사랑의 충격적인 경험 이후, 나는 그 애에게 단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래서 요즈음 아이들이 남녀 서로 자연스럽게 잘도 어울려 웃고 떠드는 걸 볼 때면 세상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요즘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소심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쉽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쉽게 사귈 수 있다면, 또한 그 만큼 쉽게 상대의 결점을 알아 쉽게 사랑의 감정이 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때의 나는 입으로는 한마디 말도 못했지만 마음속의 그 애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왔던가? 그랬기에 그 애는 내 가슴속에서 그리움의 별로 영원히 살아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푸쉬킨의 ‘삶’이란 시에 “지나가 버린 것은 항상 그리워진다”라는 구절이 있듯이 우리가 엮어 가는 삶의 행로에 아름다운 첫사랑의 대상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가슴 뿌듯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사에 이런 아름다운 추억거리들을 하나하나 만들어서 우리 영혼의 창고를 채우면서 인간은 차츰차츰 행복을 느껴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 주일이 넘게 맑은 날이 계속된다. 시원한 소나기라도 쏟아졌으면 좋겠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흠뻑 젖도록 비를 맞으며 호젓한 길을 끝없이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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