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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Aug 10. 2022

꿈, 그 채울 수 없는 갈망 (1)

오늘도 나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 교무실 뒤 쪽으로 난 작은 문을 통해 학교 뒷산으로 올라갔다. 무성한 아카시아 숲길을 지나 잔디가 곱게 깔린 꼭대기에 이르러 저 멀리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동강의 은빛 물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본다. 가늘게 뜬 눈 속에 강물이 담기고, 다시 그 눈망울이 물결 위에 떠서 흐르다가 푸르스름한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나는 또다시 망망한 꿈을 찾아 떠나고 싶어 가슴이 타는 것이었다.



내 꿈은 언제나 그렇게 먼 곳에 신기루처럼 떠 있었다. 그것은 너무 멀고, 언제나 흐릿한 곳에 있어서, 내가 겨우 감지할 수 있는 형태로 인식하게 된 것은 막연히 무언가를 갈구하기 시작하고도 퍽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 글은 그 형체도 뚜렷하지 않은 꿈을 향해서 먼 길을 달려온 평범한 소시민의 이야기다.



나는 강원도 산골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아버지의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났다.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언제나 집 앞을 흐르고 있던 동강과 자그마한 뒷동산을 배경으로 하여 떠오른다.


나는 학교 일과가 끝나면 강으로 달려가 거의 하루종일 맑고 깨끗한 물 속에서 헤엄을 치며 고기를 잡거나, 강변에 멍하니 앉아서 먼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의 박봉에다 너무 많은 식구들로 인해 끼니를 겨우 이어가는 가난한 생활이었지만  별로 힘들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산과 강으로 뛰어다니며 일상을 잊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글을 깨우치면서부터 책읽기를 아주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나를 굉장히 예뻐해주셨던 누님 얘기를 들어 보면 내가 집안이 엄청 시끄러운 중에도 혼자 구석에 처박혀서 정신없이 책을 읽고 있는 적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우리 가족들은 학교 관사에 살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꺼내서 읽을 수 있는 학교 소장 도서들이 꽤 많았고, 집 거실에도 장식처럼 몇몇 전집류가 있어서 독서 환경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헤르만 헷세의 5권 짜리 전집을 완독한 것도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인 걸로 기억된다. 그때 읽었던 '데미안'과 '지와 사랑'은 이후로 내 정신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무튼 그런 독서 활동이 자연 속에서 알게 모르게 얻어낸 풍부한 정서들을 나의 내면에 질서 있고 구체적인 것으로 형성시켜 주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내 가슴 속에는 현실 세계에 집중하기보다는, 멀리 떨어진 꿈의 세계를 향한 동경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좁은 방 안에서 터무니없이 많은 식구들이 모여 있는게 싫어서, 궁상맞은 가난이 지겨워서 밖으로만 나돌던 어린 시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지내던 그때부터 싹튼 떠남에 대한 갈증은 오래 오래 계속되어 어른이 되고나서도 떨쳐버릴 수 없는 습성이 될 정도로 내 가슴 속에 깊은 화인을 남겼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허둥지둥하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큰 고민에 빠졌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지역에는 실업계 고등학교밖에 없었는데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가고 싶었다.


오래 전부터 바라던 문학 작품에 대한 흥미는 나의 꿈을 소설가가 되겠다는 막연한 희망으로 설정해 놓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는데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꿈을 포기한다는 얘기나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은 나를 외지로 보낼 여건이 아니었다. 어쩔수없이 공고 기계과로 진학한 고등학교 3년은 철저한 아웃사이더로서의 생활이었다. 실습은 물론 이론 수업에도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수업시간에도 세계 명작 소설이나 철학 서적을 탐독하면서 내 가슴 속에 가득찬 인생과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수없이 노트에 끄적이곤 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 안주한 내 삶에 대한 속죄인 양 주위 사람들 사이에 문을 닫아 걸고 자신을 학대했다.



그러다가 고 3 때 입학시부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학교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인근에 있는 시멘트 회사에 훈련생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장 곳곳에 흩날리는 먼지들과 육중한 기계들이 쏟아내는 소음들 틈에서 나는 또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미아가 되어가고 있었다. 더구나 실적 위주의 생존경쟁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의 사회는 어린 내가 방황할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종종 희뿌연 연기가 온 하늘을 뒤덮으며 치솟고 있는 거대한 공장 굴뚝을 멍하니 바라보며 내 몸을 시멘트를 굽는 로 속에 던져 넣어 저 먼 하늘 속으로 흩날리는 공상에 잠기곤 했다.


환경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말이 그때처럼 절실하게 내 가슴에 와 닿은 적이 없다. 도무지 책을 읽으면서 내 정신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단 몇 분도 없을 정도였다.



나는 드디어 질식할 듯한 이곳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내 말을 들은 부모님은 펄쩍 뛰셨다. 내가 취업한 곳이 공고 졸업자에게는 상당히 대우가 좋은 곳이라 내 마음을 청년기에 흔히 가질수 있는 방황으로 치부한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아라. 한순간만 넘기면 훗날 지금 일을 웃으면서 얘기하면서 살게 될거다.'


어머니는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내 결심은 확고하였다. 일생 동안 막일을 하면서 보내게 되더라도 마음껏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내면의 세계를 가꾸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몇 달만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 누구에게 말 한마디 없이 뛰쳐나와 버렸다.


그건 내가 부모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한 첫번째 사건이었고, 앞으로의 진정한 나의 인생 ㅡ 사람마다 삶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ㅡ 을 형성해 나가는데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1년 정도 나는 옆길로 벗어난 인생 항로를 바로잡기 위해 집에 틀어박혀 공부를 했다. 내 혼자 힘으로라도 대학에 진학하기로 작정했다. 집안 식구들의 눈총을 피하기 위해 먼저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기로 했다.


1년 정도 노력한 결과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집에서 좀 떨어진 면사무소로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몇달 뒤에는 학비가 싸고 직장 생활도 할 수 있는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다.


비록 내가 꿈꾸어 왔던 문학적 삶과는 거리가 먼 직장이었지만 그래도 매일 활자를 대하는 직업이고 퇴근하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내 방이 있기에 많은 위안이 되었다. 또한 여러 마을로 출장을 다니며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접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폭넓은 눈이 뜨이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문학이라는 실체가 없는 공간을 떠도는, 다분히 환상적 세계에 머물러 있던 나를 웃고 울며 살아가는 현실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한없이 커다란 괴리가 다시 나를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그건 인간이기에 어쩔수없이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끊임없이 하늘 저편에서 손짓하고 있는 이상을 동경할 수밖에 없는 꿈꾸는 자의 숙명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언제부턴가 나는 또다시 언덕 위에 자리잡은 면사무소의 사무실 창가에 서서 저 멀리 산자락의 하얀 공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다시 반역의 싹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견딜 수 없는 갈증으로 변해 폭발하기 직전, 새로운 돌파구가 나타났다.



군 입대였다.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미련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담담한 마음으로 황량한 신병 훈련소 연병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4주간의 신병 훈련은 오직 살아남기 위한 한 가지 목표만이 있을 정도로 다른 모든 것을 잊어야 하는 생활이었다. 나는 거기서 내 과거의 모든 것을 백지로 돌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인간과 인간만으로 맺어진 조직 사회 속에서 나란 개인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철저히 자신을 죽이고 지내는 졸병 생활 1년 동안 나는 내 속에 존재하던 불합리한 요소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 하나 정화시켜 가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안정되어가는 군 생활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고 있었다. 길고 긴 산야를 가로질러 가는 행군 속에서, 땅 위의 모든 것이 잠든 깊은 밤에 홀로 보초를 서면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받아들여 왔던 남의 생각이 아닌, 내 내부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침잠시켜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나온 나의 삶에서 잘못된 점들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상 나는 그때까지 삶의 가치 기준을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보다 편하고 대우가 좋은 직장을 얻으려고 애썼고, 과정보다는 결과에 더 신경을 썼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리 대우가 좋다고 해도 적성에 맞지 않고, 보람을 느낄 수 없다면..... 그리고 우리 인생 행로가 결국은 무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진대 마지막 순간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결과가 대단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루 하루 자기가 좋아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생활을 해 나간다면 그것이 가장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게 그런 것이 있을까? 그렇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왔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수없이 방황하고 좌절을 맛보았던 것, 그것은 문학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 아니던가?


그래!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비록 단 한 편의 작품을 남기지 못하고 죽더라도, 내 생명의 기름을 태워서 영혼이 우러난 글을 써보자.


이렇게 결심이 정해지자 내 가슴은 형언할 수 없는 벅찬 희망으로 떨려왔다.


그러나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니 곧 내 마음 속에서 차츰 새로운 먹구름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무엇을 내 글그릇에 담을 것인가? 또 무엇이 있다고 할지라도 내게 그걸 그릇에 담을 능력이 있는가?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훨씬 많은 문학 작품들을 접해 왔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그것들이 내 정신 세계 속에서 걸러지고 재조직되지 못한 지금 상태에서 그것은 바닷가에 널려 있는 모래알과 다름이 없다. 더욱이 어떤 소재를 미적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형상화 할 수 있는 기술은 거의 무에 가깝다.


나는 그때만큼 내가 살아왔던 시골이라는 좁은 세계를 원망해 본 적이 없었다. 결국은 좀더 넓은 도시로 가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제대를 몇 달 앞둔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서 난생 처음으로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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