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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Jun 29. 2022

사람들은 누구나 제 나름대로의 길을 걷고 있다. 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다보는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도 있고, 바로 앞만 보고 달리는 현실론자, 그리고 먼 앞쪽을 그리면서 미래만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을 인생행로라고 했던가.


어릴 적 내 고향집 바로 뒤에는 작은 동산이 있었다. 그 동산은 아주 작고 큰 나무가 없어 어린 내게 친근감을 주었고, 그리로 올라가는 길 또한 꼬불꼬불한 작은 길로,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그 길을 ‘고독한 산책자의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틈만 나면 혼자 그리로 올라가곤 했다. 그 길은 그 산을 넘어 그 뒤의 산 너머 너머로 끝없이 뻗어 있어서, 언제나 중도에 돌아서는 거였지만, 나는 그런 끝나지 않는 행로를 좋아했다. 가다가 이름 모를 작은 풀잎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또 가다가 푸른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면서, 새소리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음 닿는 대로 가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 곳은 어느 때나 내 마음에 아늑한 평안을 가져다주었지만, 가을의 그 길을 나는 유난히 좋아했다. 동산은 거의 갈참나무로 덮여 있어, 가을이 되면 그것의 넓은 잎들이 낙엽 되어 쌓여서, 바람과 내 발 아래서 기분 좋은 바스락 소리를 내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누런 갈참나무 천지에서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홀로 걷는 것이 고독한 산책자에게 무척 어울렸던 것 같다. 길은 주위의 자연 속에 녹아 있었고, 다시 내 마음속에 스며 들어와 그 당시의 내 인생관을 대변하고 있었다.


‘인생은 이렇게 자신의 삶을 인식하고 음미하면서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 거야. 인생은 도달해야 할 종착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 의미가 있는 거니까.‘


그런 생각에 잠겨 그 길을 걸을 때마다, 나만은 자아를 상실하게 되는 비정한 생존경쟁의 길에 끼여들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곤 했다.


 


고향을 떠나 군에 입대를 하면서 길은 새로운 의미를 띠고 내 앞에 나타났다. 항상 규율과 단체 생활만을 강요하는 군대에서 고독한 산책자의 길이란 있을 수 없었다. 길은 오직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고, 더욱이 주어진 시간 내에 주어진 목표지점에 도달해야 하는 행군에 있어서 한눈을 판다거나 공상에 잠기는 행위는 곧 낙오를 의미했다. 처음 긴 행군에 나섰을 때 한 고참이 말했었다.


“먼 앞쪽을 보지 말아라. 뒤는 물론 옆으로도 눈을 돌려선 안 된다. 오직 바로 앞사람의 배낭만 보면서 곧 내디딜 한 발자국만을 생각해라.”


삼 년의 세월을 행군 속에 묻혀 보내고 있을 때, 그 말은 항상 진리였고, 나는 그렇게 바로 앞사람만 바라보며 끝없이 긴 길을 걸어다녔다.


텅 빈 머리, 텅 빈 가슴으로 다시 사회로 돌아 왔을 때, 내 앞에는 또 다른 새로운 길이 놓여있었다. 방향조차 가늠 못할 수많은 길에서 이리저리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을 나는 막막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어느 길인가 들어서서 걷고 있었다.


그저 내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그러나 무의식중에는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가없는 희망을 간직한 채, 불안해 하면서 불안해 하면서 그저 앞으로 걷고 있었다.


우리의 인생 행로는 말 그대로 하나의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각자의 마음속에 녹아 들어온다. 그 길에서 하늘을 쳐다볼 꿈도,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여린 마음도 잃어 버렸을 때, 우리는 입구와 똑같은 출구를 찾아 미로를 헤매는 한 마리 생쥐가 될 뿐이다. 바로 옆에 푸른 숲이 있는데도, 발 밑에 맑은 샘이 있는데도, 우리는 앞서가는 사람에게 뒤쳐질까봐 왜 빨리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메마른 아스팔트길을 끝없이 끝없이 걸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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