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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유선생 Apr 06. 2023

사랑의 증거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을 꼽아보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오랫동안 목표로 삼아 노력했던 꿈을 이루었을 때,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활동에 몰두할 때,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잠겨 있을 때, 등,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겠지만, 인간도 생물의 한 종이기에 이성이나 자기 가족을 사랑하고, 그들에게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라는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고, 한결같지 않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모두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게 아니다. 더구나 어떤 필요에 의해서 정략적인 결혼을 하는 경우, 그 이후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상대방도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즉 사랑의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떤 방법으로 확인하는 걸까? 사랑이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심리적인 것이기에, 그냥 느낌으로, 내가 그를 사랑하니까 그도 나를 사랑하고 있으리라고 서로 믿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미묘한 것이기에 우리는 좀더 확실하게 드러나는, 구체적인 사랑의 증거를 갖고 싶어한다.



상대방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면, 그 사람의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보라. 그는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뿐'이라는 진실된 대답을 한 셋째 딸 '코딜리어'를 내쫓고, 첫째와 둘째 딸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그들에게 왕국을 물려준다. 그는 진실된 말과 거짓된 말을 구별하지 못한 대가로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된다. 사랑한다는 말은 수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어떤 구체적인 증표로 나타낸다면 어떨까?


남산이나 장가계 같은 관광지에 가면, 두 연인의 이름을 적어서 사랑을 맹세한 자물쇠가 굵은 줄에 산더미처럼 걸려 있다. 결혼식을 할 때 신랑과 신부는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다이아몬드나 황금으로 만든 반지를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준다. 그뿐인가? 팔이나 다리에 연인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문신으로 새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문신' 하면 나는 40년도 더 지난 청년 시절에 읽었던,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묘옥이란 창기가 길산과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길산에게 그의 이름을 바늘과 먹물로 자기 가슴에 남겨 달라고 애원하는 부분.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절박함 앞에서,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증표를 남기고 싶어 하는, 두 사람의 애타는 심정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 제물로 삼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신은 우리 인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증거를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행동이나 증표로 사랑을 증거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성이 들어야 하고, 예식이 행해지는 것이라 좀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강도가 약해지고, 점차 잊혀져가게 마련이다.



사랑은 느낌이다. 즉 사랑은 마음의 움직임이다. 사랑을 나타내는 하트 모양이 왜 심장의 모습을 하고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그 증거를 확인하고 싶다면, 그와 자주 눈을 맞춰보고, 깊숙이 껴안아서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들어보라. 그가 당신을 정말 가슴 깊이 사랑하고 있다면, 눈에는 사랑의 꿀물이 넘쳐흐르고, 심장은 마구마구 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를 가슴 뜨겁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가 나를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지 말라. 세차게 불꽃을 내뿜던 화산도 용암이 떨어지면 차갑게 식어 가고, 지축을 뒤흔들며 쏟아져 내리던 폭포도 잠시 후면 잔잔한 강물로 유유히 흐르게 된다.


청년 시절의 질풍노도와 같은 사랑의 감정이 노년 시절에도 똑같이 계속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다 보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항상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우리가 의식하지 않지만 실상은 항상 존재하고 있는, 그런 것이 되지나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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